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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①도광의 시인의 경산 와촌

방죽길 악동들 수다, 동강 잔물결엔 그 소녀 수줍은 미소가…

도광의 시인이 무학산 중턱에서 경산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금호, 하양, 와촌의 들은
도광의 시인이 무학산 중턱에서 경산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금호, 하양, 와촌의 들은 '구만들'(9만 평, 즉 무척 넓은 들이라는 의미)로 불릴 만큼 넓었고, 햇볕이 도타워 벼가 잘됐다고 한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와촌면 동강에서 도광의 시인은 멱을 감았고, 또래 아이들과 동네 아가씨들이 목욕하는 걸 훔쳐보기도 했다.
와촌면 동강에서 도광의 시인은 멱을 감았고, 또래 아이들과 동네 아가씨들이 목욕하는 걸 훔쳐보기도 했다.

고향만큼이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곳도 드물 것이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간직한 아름다운 추억들은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시화에 밀려 고향의 정감어린 모습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시나브로 '고향 상실(喪失)의 시대', 매일신문이 추억과 정이 깃든 고향 찾기에 나선다. 시인, 소설가 등 문인들은 물론 각계각층 인사들의 고향에 관한 정겨운 글을 통해 이 시대 고향의 의미를 짚어본다.-편집자 주

1)도광의 시인의 경산 와촌

고향을 말할 때마다 고향은 늘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강물은 또랑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고, 발가벗고 놀던 냇가 우뚝한 바위는 작은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다. 마을 앞에 있는 산에 오르면 미라처럼 누웠는 못물은 더없이 깊고 푸르게 보였다. 호랑이가 칡 덤불 속에 낮잠을 자고 있다는 계전동의 달음산은 200m도 안 되는 야산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고향은 늘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기에 이제는 고향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향으로 가는 초입에는 방죽이 있고, 작은 언덕이 있고, 포플러로 에워싼 학교 운동장이 있고, 측백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면사무소가 있고, 묵은 살구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살구나무의 분홍꽃 화사한 빛깔 때문에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살구나무 그늘에 서면 마을은 포근하게 누워있다. 여기저기 무너져 내린 흙돌담이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물소리 내며 우는 강둑의 풍경이 시야 밖으로 넓혀졌다. 그런 풍경이 시(詩)를 노래하는 그리움을 줄까. 하나의 풍경이 내면에 스민 어떤 전형성이 그리움이라는 영감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길에는 정겨운 마을 이름들이 늘어서 있다. 동강리, 계전리, 소월리…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마을은 미세한 그들만의 숨결을 들려준다. 까맣게 익은 열매를 달고 거름 무더기 옆에 자라는 까마중 같은 마을 사람들의 구수한 얼굴과 살냄새… 그럴 때 나는 길을 멈춘다. 바람개비로 돌아오던 과수원 길에 서서 한 편의 시를 쓰기도 한다.

무학산에 서설이 내리면 봄이 길다 / 친정 다니실 적엔 백리 바깥도 아득한 산등성이다 / 분이 시집가던 날 한닷새 눈이 왔다 / 천지가 루진이 눈벌판처럼 하얗게 울어댔다 / 첫날밤을 눈이 붓도록 울고 / 읍내로 시집 간 분이는 / 한 번도 친정엘 오지 않았고 / 무학산엔 서설이 내리지 않았다 /

―'무학산을 보면'

이 시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분이가 시집을 가고는 친정인 고향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데 있다. 계전리에 산 분이는 경북여고 재학 때 시집을 갔다. 분이가 시집 가던 날부터 오기 시작한 눈이 한 닷새 계속됐다. 눈은 분이의 슬픔을 덮어주기라도 하는 듯 톨스토이 소설에 나오는 루진이 방황하던 눈벌판처럼 천지는 하얗게 내린 눈으로 앙앙 울어댔다. 꿈이 많았던 어린 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낸 어른들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 시를 쓰게 된 것이다 이 시를 발표했을 때 구활 형이 매일신문 안동 북부본부장으로 있을 때 시를 읽었다고 전화를 준 적이 있다. 폴 발레리가 지중해 세트 부둣가를 아들과 함께 거닐면서 아들에게 한 말이 있다. "이 세상에는 어중이 떠중이의 수많은 독자보다 한 사람이 천 번을 읽어 주는 독자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너는 알아야 한다"고 한 말이 주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1960년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하양 와촌서 대구로 유학온 우리들은 기차통학을 하거나 신암동에서 자취를 하거나 누나 집이나 친척 집에 쌀 한 말에 돈 천원을 주고 하숙을 하기도 했다. 토요일이 오면 동촌 반야월의 능금밭을 지나 햇살이 몸에 감기는 청천 금호강 비단 물결을 보면서 '미카', '파시', '소리' 등의 이름이 붙은 석탄 연기 시커멓게 내뿜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일주일에 한번씩 고향 시골에 갔다온다. 구활의 고향은 하양이고, 내 고향은 와촌이다. 하양에서 북쪽으로 시오리쯤 상거(相距)한 곳이 와촌이다. 구활의 고향 하양과 도광의의 고향 와촌은 시인이며 평론가인 박용철의 고향 송정리와 시인 김영랑의 고향 강진과 같이 이웃에 붙어 있다. 요즘 나는 구활의 감칠맛 나는 시적인 글을 읽을 때마다 풀새비 똥이 시커멓게 묻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가끔 수필가 도광의가 시인 구활이 되어 물새 발자국처럼 한 시대의 사위어져 가는 고향 풍경을 보는 것 같다.

고향 친구 구활 / 금호강 사과밭을 떠나지 못했다 / 햇살 감기는 고샅길이 있기에 / 국밥 말아 먹는 하양 장날이 있기에 / 꼬리 긴 노랑 할미새랑 / 가슴 붉은 딱새랑 / 한 지붕 밑에 살고 있기에 / 따신 털 속에 먹이 숨겨뒀다가 / 버들 숲 갈대밭에 물새 발자국이 있기에 / 여름이 남기고 간 소나기 구름이 있기에 / 고향 친구 구활 / 금호강 사과 밭을 떠나지 못했다

― '고향 친구 구활'

누구나 고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워할 고향이 있는 경우에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을 때도 그 무엇을 그리워하며 그 때문에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것이다. 도연명은 '귀거래사'에서 "새는 날다 고달프면 돌아올 줄 안다"고 말했고, 영원의 청춘을 누리던 괴테도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에 "모든 산봉우리에 휴식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더욱이 외로운 사람에게는 고향은 마음의 젖꼭지와 같은 것이다. 도연명이나 괴테도 남다른 감수성과 직관으로 향수의 깊은 의미를 체득했던 것이다.

고향으로 갈 때마다 나는 언제나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낮게 엎드린 야산을 보게 되고, 지나치는 마을 입구마다 서 있는 느티나무를 보게 된다. 차창 저 편에 나타났다가 사라져 가는 강물과 못물에 눈을 주면서 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봄이면 산과 들에는 잎이 돋고 꽃이 핀다. 여름을 넘기면 나무들은 물이 들고 잎을 떨어뜨리며 가을이 간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그것과 무엇이 다르랴. 내 손에 내 얼굴에 주름을 남기며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리라. 흘러가는 강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내 생애의 강물도 저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언젠가는 다 가지고 갈 것이다. 고향으로 갈 때마다 이런 따위의 감상에 사로잡히다 보면, 나는 어느덧 포플러가 줄지어 섰는 고향 마을 동구 앞에 서 있게 된다. 경산시 와촌면 동강리 171번지, 내가 웃고 울며 자란 고향이다. 마을 앞으로 강물이 동으로 흐르기 때문에 동강리(東江里)라 했단다. 서강리(西江里)란 이름보다 얼마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이름인가. 내가 이런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마을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시인(詩人)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나를 아는 분들이 술자리에서 농삼아 말하기도 하지만, 동강리란 이름이 시인의 고향 마을 이름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가까운 곳에 고향을 두고 있건만 마음속의 고향은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남아 있는 고향의 이미지는 부호의 딸을 아내로 삼아 궁정시인으로 영달한 '자허지부'(子虛之賦)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세 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금의환향하는 이미지가 아니고, 동구 밖 키 큰 회나무가 바람 속에 떨고 있는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향수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향수란 사람의 마음을 외롭게 흔들어 주는 것만 아니다. 어떨 때는 우리의 거칠어진 정서를 곱게 빗질해 주기도 하고, 흩어진 생각을 외가닥길로 인도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복잡한 도시 공간 속에서 일상의 부대낌 속에서 벗어나 술이 취해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방죽이 있고, 강물이 흐르는 숲이 있고, 포플러로 에워싸인 운동장을 가진 학교가 있고, 측백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면사무소가 있는 고향을 생각하게 되고, 고향에서 보내던 어린 날로 돌아가게 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 유년의 땅에 돌아오면 누구나 지난날의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게 해 주는 것이다. 수로에 잠겨 첨벙대며 밤길을 따라오는 물속의 달, 집 뒤안까지 다가선 산그림자. 무더운 여름밤 무시로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기. 하늘에 가득한 별과 꽁지에 파란 불을 달고 무수히 날아다니는 개똥벌레. 수시로 떨어지는 별똥별과 야밤의 광대무변한 정적과 침묵… 그런 것들이 겁많은 어린 날의 우리를 떨게 했고, 섬뜩거리게 만들었고, 까닭 없는 공포감으로 몰아 넣었지만 그 공포감이 우리를 순수하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유년의 땅에 와서 두려움과 공포감을 되찾는 것은 잃어버린 옛날의 순수를 되찾아가고 있는 것일까. 고향을 돌아볼 때마다 느끼는 어떤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도회에서 익혀온 거짓 의상과 속임수의 몸짓들이 깨끗하고 순진한 고향 풍물 앞에서 발가벗겨져 가는 자기 폭로에서 오는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고향에서는 언제나 정든 풍물과 인정이 맑은 거울이 되어 거울 앞에 선 자기의 모습을 잘 드러내 준다.

여름 시원한 그늘. 매미 소리 합창 속에 한 소년을 잠재워 주던 늙은 팽나무 아래 섰을 때, 국민학교 4학년 때 젊은 여 선생님이 울고 떠나간 아카시아 무성했던 신작로가 내려다 보이는 산허리를 돌아설 때, 올해 아흔여덟이 된 종조모의 까마득한 나이를 바라볼 때, 고향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으며, 고향은 나에게 무엇을 안겨다 주었을까.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그리워했던 고향은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고향의 봄'의 이원수 시인도 '향수'의 정지용 시인도 고향을 노래했지만, 언젠가는 장편 서사시로 고향을 노래해 볼 작정이다.

'새는 날다 고달프면 돌아올 줄 안다'고 말한 도연명의 시를 생각하면서 고향이 주는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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