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삶] 못 배운 이에게 배움의 기회를…고정조 학산야간중고등학교장

"연필잡기 힘들었던 전신화상 학생, 지금 복지사로 우뚝"

"가난 때문에 공부를 못한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어 야학을 열었어요. 제자들이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흐뭇합니다."

대구 달서구 학산종합사회복지관 2층에 위치한 학산야간중고등학교의 고정조(53) 교장. 그는 13년 동안 야학을 열며 못 배운 이들의 참스승 역할을 묵묵히 해오고 있다.

"복지관 주변에는 영세민이 많이 살고 있어요. 야학에 오는 분들 대부분이 40~60대 아주머니들입니다. 어려운 형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 했지요. 이분들에게 배움의 갈증을 풀어주는 게 저의 사명이라고 여깁니다."

학산야간중고등학교는 1999년 개교해 38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현재 재학생은 중등반 15명, 고등반 30명이다. 이들을 위해 12명의 선생님이 야학봉사를 하고 있다.

"처음 야학을 개설했을 때 교실이 없어 1년간은 복지관 지하실을 개조해 사용했어요. 비만 오면 빗물이 줄줄 새는 등 환경이 말이 아니었지요. 그 후에도 5년간은 빈 강의실을 떠돌아다니며 가르쳤어요. 지금은 복지관에서 교실 2개를 내줘 너무 고맙기만 하죠."

그는 이런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도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했다고 자랑했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구공업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해 어린이집 원장이 된 50대 여성도 있고, 학교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던 한 여성은 대구공전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해 영양사로 다시 학교에 취업,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 계명대 미술대에도 2명을 진학시켰다고 했다.

"전신 화상을 입고 야학에 입학한 50대 여성이 있었어요. 손에도 화상을 입어 연필 잡기조차 어려웠죠. 하지만 2년간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지금은 사회복지시설에서 복지사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감격스러워요."

그동안 야학 운영이 평탄치만은 않았다. 2002년 학생 수가 중등반 8명, 고등반 9명으로 줄어들자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생들을 다른 야학에 보내고 폐교를 하자고 주장하며 교단을 떠났다. 하지만 고 교장은 학생들이 걱정돼 야학을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야학은 대부분 검정고시 위주의 공부만 해요. 우리 야학은 일반 학교 교육과정처럼 입학식, 스승의 날, MT, 가을 운동회, 졸업식 등 다양한 활동을 하죠. 못 배운 사람들에게 학교 체험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죠."

야학을 마친 졸업생들도 모교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각종 행사마다 30명 이상 찾아와 경비를 보태주고 학생들에게 선물도 전해준다.

"스승의 날에는 매년 복지관 3층 대강당에서 행사를 가져요. 음식은 재학생들이 직접 준비하죠. 행사 축하를 위해 오는 졸업생까지 합치면 100여 명 정도 모입니다. 모두들 어렵게 공부한 탓인지 어떤 어르신은 큰절까지 하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면 금세 눈물바다가 돼요. 그때는 저도 함께 울죠."

현재 학산야간중고등학교를 위해 도움을 주는 이들도 많다. 교사로는 달서구청 조기태 경제환경국장, 달서구의회 윤영호 의전팀장을 비롯해 창녕제일고 이석수 교감, 합천야로고 배우범 교사, 경산공고 이동현 교사 등이 봉사하고 있다. 야학 초창기 교사로 활동했던 아동문학가 박운택 씨는 5년 동안 분기마다 동화, 소설 등 80여 권의 책을 보내주고 있다고 전했다. 또 작년에 현장근로자로 어렵게 사는 졸업생이 후배의 학업을 돕기 위해 장학금 50만원을 전달해왔다고 했다.

영남대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26년간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고 교장은 영어수업을 맡고 있다. 그는 앞으로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에게 무료로 개인 과외 봉사를 해주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그에게 인생의 최종 꿈은 서민층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것. 뜻있는 교사들과 함께 준비 중이고 이르면 내년쯤 개교할 수 있다고 전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붓다 보면 물은 금방 빠져도 콩나물은 보이지 않게 조금씩 자랍니다. 지금은 배움이 적지만 공부를 하다 보면 머리에 지식이 가득 쌓입니다." 이는 고 교장이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