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이영희 대기자는 1994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 전반을 살펴보면 오른쪽 날개가 너무 비대해져 있습니다.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더불어 좌파와 우파 모두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합니다. '악다구니'나 '우격다짐'은 더 이상 곤란합니다."
6일 오후 만난 유시춘(61) 사단법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장의 진단이다.
경주 출신인 유 이사장은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으로 대표되는 80년대 학생운동권의 '만년 누나'다. 1985년 동생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옥바라지를 위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전신인 구속자가족협의회에서 활동한 것이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386'이 '486'이 될 정도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녀는 운동권 출신인사들로부터 '누나'로 불린다.
유 이사장은 "'인간은 자연의 산물이기도 하면서 시대의 포로'라는 말이 딱 맞는 듯하다"며 "두 아이의 엄마, 국어 선생님, 소설가로 평온하게 살던 제가 감옥을 드나들며 민주화 운동을 할 줄을 꿈에도 생각 못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도 당시 구속학생 어머니들이 보여준 수준 높은 모성애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반성문을 써 오면 자녀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도록 선처해 주겠다는 당국의 말에 앞뒤 보지 않고 자녀설득에 나섰다가도 내 자식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결국은 자녀의 뜻을 따르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저는 그 어머니들께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셨다고 말씀드립니다. 다른 이야기는 필요가 없지요."
유 이사장은 80년대 초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화국 정부에 대해 당시 사회구성원 가운데 유일하게 저항세력으로 남아있던 학생운동권의 결기에 공감, 그들을 도운 것이 고된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물론 그녀가 돌본 운동권 동생에는 '친동생'(유 대표)도 포함돼 있다.
그녀가 태어난 것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한 달여 전이었다. 유서깊은 역사도시 경주시 북부동에서 2남4녀 화목한 가정의 맏딸이었다. 역사교사였던 유 이사장의 아버지는 당직을 서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 도서관 사서를 자청하면서까지 자녀들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녀는 "선친은 당대 어느 누구보다 페미니스트였던 것 같다"며 "선친으로부터 양성평등을 넘어 거의 특혜와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고 자랑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폄하가 심한 보수적인 동네에서 태어났지만 축복을 받은 셈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고향 하면 '형산강 금장다리에서 어머니와 빨래하면서 대구'서울로 가는 기차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바라보던 시절'이 떠오른다"며 "그때는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던 바깥세상이 그렇게도 궁금했었다"고 회상했다. 바깥세상에 대한 그녀의 동경은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집안이 대구로 이사가면서 어느 정도는 해소됐다. 그러나 대구는 한계가 있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학진학은 서울이었다.
그녀의 대학생활은 무덤덤했다. 당시 대학강의는 문학소녀였던 그녀에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 아울러 학비와 생활비 부담 때문에 캠퍼스의 낭만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습작활동에 더욱 열정을 쏟으며 대학시절을 보낸 것이다.
그녀는 졸업 이듬해인 1973년 중편소설 '건조시대'(세대)로 문단에 등단했고 장충고 국어교사로 교직생활도 시작했다. 소설가 이외수 씨와 이재오 특임장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이때였다. 이외수 씨는 유 이사장과 등단 동기여서 여러 차례 술자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고 이 장관은 장충고에서 책상을 마주하며 근무한 인연이 있다. 1985년 교직을 그만둘 때까지 유 이사장은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했다.
그녀는 요즘 일상의 행복에 새삼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나는 가수다'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 더 없이 행복하다."
작가로서 그녀의 바람은 자신이 살아온 지난 시대를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될, 매끄러운 장편소설 한 편을 쓰는 일이다.
유 이사장은 경주 계림초-경주여중-대구여고-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을 지냈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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