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봉정암에서

퇴근길에 불쑥 들른 친구가 설악산 봉정암엘 간다고 함께 가잔다. 빚이라도 진 것처럼 언젠가 가봐야 할 곳으로 맘속에 담아두고 있던 곳이라 만사 제쳐 두고 다음날 새벽 출발하기로 덜컥 약속을 했다. 항상 어디론가 떠날 때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편한 맘으로 나설 수 있었기에 떠난 뒤의 일들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한다.

만해 선사보다 일해 선생(전두환 전 대통령) 때문에 더 유명해진 백담사를 뒤로하며 산을 오른다. 평일이라 조용한 계곡엔 실개천처럼 흐르는 자그마한 폭포가 수없이 펼쳐지고, 그 아래에 파인 물웅덩이가 백 개의 연못을 이루고 있어 백담(百潭) 계곡이란다. 품속을 파고드는 서늘한 기운은 떠나간 연인이 돌아온 듯 반갑고, 산목련 향에 취해 몽롱해진 우리를 앞장선 다람쥐가 잰걸음으로 길 재촉을 한다. 하늘을 가려버린 서어나무, 박달나무, 신갈나무 잎 사이로 실타래 같은 오후의 햇살이 나른하게 스며들고 숲 바닥에는 이름 모를 풀꽃들이 수줍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누우면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 같은 편안한 정경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제주에서 사진가로 살고 있는 K형이 생각난다. 20년 전쯤 2, 3년 정도면 모든 것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들른 제주를 아직도 렌즈에 다 담지를 못해 떠나지 못하고 있는 분이다. 언젠가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도 고통스럽던 시절 3년 동안 제주의 숲 속에서 살다시피 하며 촬영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영혼의 상처도 나아 있더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렇듯 엄마 품처럼 넉넉한 자연이 가진 무한한 치유력을 보고 있노라면 의사란 나의 직업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점차 험해지는 산길을 힘겹게 오르는데 길가에서 숨을 고르고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물을 청한다. 그 연세에 오르기는 너무 힘든 곳이라 말을 붙이니 곁에 있던 백발의 아드님이 바람 쐬러 근처에 왔던 어머님이 막무가내로 봉정암을 가자 하셔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르는 중이라고 얘기를 한다. 아마도 불심 깊은 할머니가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봉정암을 오르시는구나 싶어 가슴 한쪽이 찌르르해진다.

어둠이 내리는 봉정암에 오르자 행여 끼니를 거를까 먼저 공양간부터 찾는다. 허겁지겁 빈속을 채우다가 불현듯 오던 길 내내 생각하던 인연, 비움, 깨달음 같은 고상한 화두보다 지금 내게 절실한 건 한 끼 식사였구나 싶어 쓴웃음을 짓는다. 산사의 밤, 사리탑에서는 스님의 능숙한 목탁소리에 얹힌 독경 소리가 숨 막힐 듯 빠르게 몰아치고 있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법당에서 울리는 어느 보살의 서툰 목탁소리 쪽으로 쏠린다. 간절함이 간절하게 느껴지는 애잔한 목탁소리 밤새 그치질 않고, 괜스레 여인의 상념을 헤아리노라 나의 불면의 밤도 깊어 가는데 낮에 만났던 할머니마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법당 앞을 서성이고 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깨어 있던 사람이 더 많았던 봉정암의 밤을 밝히며 동이 트자 새벽길 떠나는 이들의 다소 흥분된 웅성거림과 바쁜 발걸음들이 적막하던 산사를 다시 생명의 꿈틀거림으로 채운다. 가는 길에 드시라며 건네는 주지 스님의 고마운 주먹밥 한 덩이와 물통 가득 채운 약수를 배낭에 챙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합장을 한다.

내려오는 길에 문득 학창 시절 읽었던 법정 스님의 '설해목'(雪害木)이란 글이 떠오른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어떻게 나뭇가지가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질 수 있을까라고 궁금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고 눈이 보고 싶을 때면 오르던 겨울 산에서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수없이 보았다. 그리고 이젠 마음의 티끌들이 소리 없이 쌓이다 보면 영혼의 가지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공부란 게 마음으로 깨닫기는 쉬워도 몸으로 따르기가 힘든지라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고 애면글면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오늘 따라 무척 안쓰럽다. 내려가는 길에는 천불동 계곡 맑은 물에 내 맘 속의 바람, 시름 이런 것들 모두 흘려보내고 훠이훠이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강민구(KMG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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