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동화사길'이 왜 안 되는지 정부는 답하라

오는 29일 새 도로명 주소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사찰이나 교회 이름을 딴 도로명을 모두 없앤 것은 졸속 행정의 전형이다. '동화사길' '화계사길' 등 오랫동안 써오면서 주민에게 친숙하고 나름 유래를 갖고 있는 도로명을 엉뚱한 이름으로 바꾼 것은 다분히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자 일방통행식 행정인 것이다.

불교식 도로명이 일반 도로 이름으로 바뀐 곳은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넘는다. 대구만 해도 동구 도학동 '동화사길'이 '팔공산로 201길'로 바뀌는 등 3곳의 길 이름이 변경된다. 역사가 녹아있고 전통문화의 숨결이 살아있는 도로 명칭을 이렇게 하루아침에 바꾼 것은 주민을 무시한 처사이자 혼란만 가중시키는 개악인 것이다.

정부는 지역 특색에 맞게 도로명을 체계적으로 재정비하는 것이 새 주소 사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과연 기존 도로명이 그동안 왜 사용되고 정착됐는지 한 번이라도 고심해 본 공무원이 과연 있는지 묻고 싶다. 새 도로명 주소 업무의 기준인 행정안전부 '도로명 주소 업무 편람'에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특정 종교 시설은 도로명에 적합하지 않다'고 규정해 놓고 길 이름을 함부로 바꾸려고 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런 논리라면 우리 역사나 문화, 전통적 가치가 큰 의미 없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지명은 그저 보기 좋으라고 붙이는 이름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주민들 귀와 입에 익숙해져 생활에 녹아든 것은 물론 역사와 문화, 풍속을 담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편리한 새 주소를 만든다고 유서 깊은 지명을 하루아침에 엉뚱한 이름으로 바꿔 부르라는 것은 주민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별다른 유래나 의미가 없는 도로명이나 일제 때 엉뚱한 이름으로 바뀐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민 의견을 듣고 재검토해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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