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국경을 넘는 일/전성태 /창비

생동감 있는 언어, 정교한 구성으로 삶의 현장 묘사

신동엽창작상을 비롯해 여러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전성태의 단편소설을 읽었다. 사투리며 문장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소재도 다양하고 내용이 고정된 틀에 얽매여 있지 않다.

그의 단편소설 '소를 줍다'는 장마철 흘러내려오는 강물 속에서 소를 한 마리 주은 소년과 가족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3학년인 주인공 소년은 장마가 조금 누그러지자 아이들과 함께 마을 앞을 흐르는 옥강 둑으로 나가 강물에서 떠내려오는 물건을 건져낸다. 그러다가 소년은 바위에 부딪혀 튀는 흙탕물 속에서 소머리를 얼핏 발견하고, 뒷다리가 바위 틈에 끼인 소를 어렵게 건져낸다. 소가 없어 오쟁이네 소를 늘 부러워하던 소년과, 소년의 가족이 주워온 소를 둘러싸고 겪게 되는 여러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주워온 소는 아깝게도 주인이 찾아가고 만다. 소 한 마리도 사기 어려운 가난한 농가 살림이며, 그 와중에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소년의 아버지, 차돌처럼 야무진 소년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사투리의 향연이 흥미롭다.

"나가 소를 줏었당께." "닌장, 으떤 얼개미 겉은 작자가 소를 대구 내돌렸디야?" "옥강이서 줏었당께요. 다 죽어가는 걸 나가 생똥을 싼시롬 건져내 부렀어요, 인자 요것은 우리 것이에요." "너, 이놈의 새끼, 학교 파하면 집으로 핑 들어올 생각은 않고 으디서 자빠졌다가 인저 기들어오는겨!" "니 숙제는 해놓고 요라고 댕기는 거여? 대체 니는 어디서 까나온 자식이길래…."

저수지는 수문을 열어 물의 양을 조절하면 되니 비가 많이 내려도 괜찮지만, 흐르는 물이나 강물은 그렇지 않다. 좁은 시냇물이라도 가끔 비가 많이 오면 순식간에 다리도 무너뜨리고 제방도 허물어뜨린다. 어릴 적 고향에서 장마철이면 엄청난 속도로 콸콸 흘러가는 물을 보며 놀랍고도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이 소설을 읽었다.

시쳇말로 뜨지 못한 개그맨이 화자인 '존재의 숲'도 흥미롭다. '나'는 모 정치인의 성대묘사로 풍자의 언변이 촌철살인이라는 평을 받으며 당당히 데뷔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나는 밤낮으로 정치와 세태를 풍자하는 소재를 만들고 혀에 익힌다. 그런데도 객석의 반응은 늘 신통치 않다. 답답한 나는 점쟁이를 찾아가는데, 점쟁이인 마흔이 갓 된 사내는 '말이 입에 올랐으되 삶을 밟고 있지는 못한 형국'이라며, 평생 글을 다뤘다는 노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노인네 평생 소원이 글자가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는 글을 짓는 거라는데 그걸 못했다며, 말에 매여서 헤어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아무려나, 나는 점쟁이의 말을 따라 이야기를 줍기 위해 깊은 산골로 찾아든다. 점쟁이가 스물일곱에 어느 북쪽 골짜기에 들었다가 큰 별똥을 주워온 적이 있다는 말을 따라. 그리고 찾아든 골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테면 나는 그 노인네들이 죽음과 관련된 어떤 얘기를 이렇게 하는 걸 들었다. '그 영감 산에 올라간 지 꽤 됐지? 한 십 년이 넘었을 걸?' '그렇지, 이태 전에 저 산으로 옮겨갔으니 띠가 돌았네.' '그럼 이쪽 나이로 올해 셋인가?' '가만 있자, 남의 나이로 세 살이 맞네.' 꼭 저쪽 세상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죽은 그 영감님네 나이 여든셋이었다. 여든까지가 한 사람의 생이 닿을 수 있는 나이이고 그 뒤로 사는 건 남의 나이를 빌려다가 대신 먹는 거라고 했다. 나 자신 곧고 휘고 돌고 엎어지는 말의 묘미를 좇아 살지만 그네들의 풍성한 은유와 비유 앞에서 내 언어는 초라하였다."

칼잽이 소년이 세계적인 화가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한국의 그림', 중국 몽골의 평양랭면집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한국 관광객들의 이야기를 그린 '목란식당', 표제작인 '국경을 넘는 일'도 재미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모처럼 소설읽는 재미를 담뿍 느꼈다.

신남희(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