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지막 독립군이자 전 고려대 총장이었던 김준엽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분의 삶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읽으며 우리 시대 마지막 선비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산 정약용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온 박석무 선생이 조선의 의인들을 찾아 길을 나섰다. 난세를 극복한 재상들인 서애 류성룡, 백사 이항복, 한음 이덕형, 번암 채제공 등과 조선 성리학의 쌍벽인 퇴계와 율곡, 도학자 하서 김인후, 창계 임영 등의 생가와 묘소를 방문하여 그들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는 역사기행이다.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한평생을 반듯하게 살아간 선비들이다.
"토지의 공개념이 제대로 실행되면 모든 제도가 바르게 된다. 빈부가 저절로 균등해지고 분배가 저절로 확정되고 호구도 저절로 밝혀지고 군대도 저절로 정돈되니, 이렇게 한 뒤라야만 백성을 교화하는 정책이 정해질 수 있다." 조선의 실학을 개창한 반계 유형원은 토지공개념을 실시해 제도를 바로 세우자고 주장하였다. 유형원의 '반계수록'은 한국 학술사에서의 의미로 보나 실학사상에서의 위상으로 보나 매우 획기적인 책이다. 웬만한 실학자나 유학자라면 '반계수록'을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조선 후기 사회나 학계에 미친 영향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조선의 실학사상은 반계의 '반계수록'으로부터 본모습을 보였고, 그 후의 실학자들은 대부분 반계의 경륜과 경세론, 경국제민의 경제사상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반계의 체계적인 실학사상에 큰 영향을 받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실학사상을 정립하고 새로운 변화의 논리를 개척했던 학자이자 사상가였던 분은 성호 이익이다. 성호의 학문을 가장 넓고 깊게 연구한 학자인 서울대 국사학과 한우근 교수는 성호를 가리켜 이렇게 평했다. "평생을 두문불출하며 학문에만 몰두했던 성호의 식견은 넓고 깊었다. 천문'지리에서부터 일반 민속에 이르기까지 통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그의 학문과 덕망은 널리 알려져서 점차로 따라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 하나의 '학해'를 이루었다." 모든 강물이 흐르고 흘러서 큰 바다로 들어오듯이, 성호의 넓고 깊은 학문 때문에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학자들이 '성호장'으로 모여들어 학문의 바다를 이룬 곳이 성호학파였다는 뜻이다.
'쌀 한 톨 물 한 모금도 왜놈 것은 먹을 수 없다'던 의병장 면암 최익현은 조선이 망해가던 무렵, 투철하게 충의의 유학정신을 발휘해 뛰어난 애국심으로 망해가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대표적인 충신이다. 그는 대원군의 정책에 비판을 가하는 상소를 올리며, 1876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 꿇어앉아 조약을 맺어서는 안 된다고 상소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도끼로 목을 베어달라는 무서운 기개와 함께였다. 1906년 그는 마침내 의병을 일으켜 일본의 불법침략에 항거했다. 그리고 74세인 고령에 체포되어 일본 헌병의 이송으로 저 일본 땅, 대마도에서 감옥에 갇히게 된다. 감옥에서 면암은 쌀 한 톨 물 한 모금인들 왜놈의 것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가 절명하였다. 면암의 유해가 대마도에서 부산항에 도착하자 부산시민은 완전히 철시하고 임시 빈소를 찾아 남녀노소가 통곡했다. 자택인 청양으로 운구될 때 지나는 곳마다 백성들이 울부짖으며 애도했다. 마침내 군중의 소요를 염려한 일본 당국이 강제로 기차로 운구케 했고 본가에 도착해 장례를 치를 때는 수천 명의 선비들이 모여 거대한 유림장으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정신적 유산으로 깊이 연구되고 널리 알려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선비정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재물이나 지위에 연연하지 않으며, 위정자의 잘못을 과감히 비판하고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의를 지키는 참 지식인의 사상과 정신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에 참된 선비가 그리워진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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