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립무용단 무대 담당 김진구(45) 씨의 업무는 다양하다. 무대 연출, 무대세트 관리, 무대 설치 및 공연 중 전환, 공연 뒤 철거 등을 비롯해 무용단 일정관리, 무대소품 운반까지 그야말로 '그림자 배우'다. 공연 중에는 무대전환을 위한 사인뿐만 아니라 인력 부족으로 직접 전환 작업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다.
◆암전상태서 무대전환 자주 다쳐=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위에는 오롯이 배우들만 남는다. 그러나 공연 시작 전 무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앞 공연이 끝나고 무대가 철거되면 김진구 씨를 비롯한 무대 스태프들은 새 작품 공연을 위해 무대를 설치하고, 배우들의 리허설에 맞춰 무대와 소품의 위치를 잡는다. 또 각종 무대와 소품이 짜여진 각본에 맞게 등장하고 사라지고, 전환되는지 점검한다. 맞지 않는 부분이 발생하면 수정을 거듭한다. 완벽한 공연준비를 위해 밤을 새우는 일도 흔하다. 배우들이 리허설을 마치고 퇴근한 이후에도 이들의 작업은 끝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유럽 공연장에 비해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연장은 무대설치와 철거를 위한 장비가 부족하고, 사람 손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고될 뿐만 아니라 위험요소도 많다.
"공연 중 무대전환작업은 관객들 눈에 띄면 안 되는 만큼 암전상태에서 빠르게 진행하다 보니 손발을 다치는 경우가 흔합니다."
김진구 씨는 원래 무용수였다. 계명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고, 1993년부터 2002년까지 대구시립무용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했다. 수백 회 공연을 했고, 공연 중에 여자 무용수를 자주 들어올리다보니 허리에 무리가 갔다. 디스크 진단을 받고도 무용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2002년 어느 날 공연 도중 여자 무용수를 들었는데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여자 무용수를 떨어뜨렸고, 자신은 바닥에 쓰러졌다. 병원으로 실려 갔고, 다시는 무용수로 무대에 설 수 없었다.
"2003년부터 무대 일을 시작했습니다. 대구의 무용작품 대부분이 제 손을 거쳐 갔습니다. 정기공연, 순회공연, 찾아가는 공연 등을 가리지 않았고, 많을 때는 하루에 2개 작품을 담당한 적도 있습니다."
무용공연뿐만 아니라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의 무대도 담당했다. 그러나 그 중 무용공연을 가장 많이 담당했고, 무용공연의 무대설치와 전환, 철거에 관한 한 훤하게 꿰고 있다고 했다.
◆작품에 대한 완전한 이해 필수=공연 중에 무대 담당자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무용수 혹은 배우의 동작과 음악에 맞게 무대를 전환시키는 작업이다. 초 단위로 쪼개지는 이 작업을 위해 초시계를 들고 다니며 무대전환 작업에 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무용수 출신인 덕분에 작품에 대한 이해가 빠른 김진구 씨는 눈썰미로 일을 처리한다.
"시계보다는 공연진행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며 전환합니다. 그런 덕분에 무용수들이 약간 틀리더라도 무리 없이 무대전환을 꾀할 수 있습니다."
공연예술에서 무대 분야는 크게 2개 분야로 구분된다. 안무자나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디자이너와 제작자들이 무대를 제작하는 것이 첫 번째 분야다. 김진구 씨는 그 다음 단계의 작업자로 제작된 무대와 소품을 안무자나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무대 위에서 형상화하는 사람이다.
연출자나 안무자들 중에서 무대에 대해 훤하게 꿰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만큼 무대 설치와 전환 때 안무자나 연출자는 무대 담당자와 의논을 통해 무대와 소품의 위치와 등장과 퇴장 시간을 결정한다.
시간예술인 만큼 무대공연이 언제나 각본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배우들이 실수할 수도 있고, 음악이 조금 더 빠르거나 늦을 수도 있다. 이럴 때 노련한 김진구 씨의 진행이 빛을 발한다.
"좀 잘못됐더라도 최대한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틀렸다고 되돌릴 수는 없지요. 관객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작품 전체에 영향을 덜 주는 범위 안에서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것이 또한 무대 담당자의 역할이지요."
◆무대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그의 몫=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인간적인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김진구 씨는 수석무용수 출신이자 대선배답게 무용단원들과 예술감독, 무용단과 대구문예회관 행정팀 사이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특유의 유머와 어떤 곳에나 어울리는 변신술로 원활한 해결을 돕는 것이다. 감독의 호된 꾸지람에 풀 죽은 단원들을 격려하고, 단원들의 어려움을 감독에게 에둘러 전달하기도 한다. 관객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야말로 공연을 위한 모든 뒷일을 처리하는 해결사인 셈이다.
그러나 사람 좋은 그에게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대구에는 무대작업을 위한 전문 크루가 절대 부족합니다. 그래서 무용수들이 무대설치와 이동, 철거에 동원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심지어 무용수들이 바닥 청소까지 합니다. 또 극장에 장비가 있는데도 극장 관계자들이 귀찮다는 이유로 장비를 내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새 장비를 구입하거나 밖에서 가져와야 합니다. 관객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지원과 협조가 절실합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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