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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한류 시대 기대감"…예술의 전당 '메밀꽃 필 무렵'을 보고

오페라
오페라 '메밀꽃 필 무렵' 엔딩 합창 장면.

지난달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최된 제2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장식한 오페라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 원작, 탁계석 대본, 우종억 작곡)을 보고 대구지방검찰청 조주태 서부지청장이 감상문을 썼다. 조 지청장은 베이스로 성악을 즐기는 음악 애호가다. 오페라 '메밀꽃 필 무렵'은 제2회 대한민국오페라 페스티벌 초청작이자 매일신문이 주최한 작품이다.

익히 보고 듣던 오페라에 비해 창작 오페라는 보는 이에게 예술적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생경스러움으로 인해 쉽사리 감흥을 받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우리 마음속에 잘 숙성된 채 용해되어 있던 문학작품의 아름다움에 오페라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채색 옷을 덧입혀 보았댔자 오히려 소설의 미감(美感)을 더 떨어뜨릴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이번 오페라 '메밀꽃 필 무렵'은 그런 나의 예단(豫斷)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서곡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되레 예전의 소설은 까맣게 잊은 채 오페라 그 자체에 몰입해 가고 있었다.

우리 고유의 장단과 가락이 잘 버무려져 뿜어내는 오페라의 그 희미한 복선(複線)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무대에다 단단히 붙들었고, 봉평장터에 색다르게 삽입된 농악은 활력 넘치는 장터 사람들의 합창과 충주댁을 향한 동이의 풋풋한 사랑의 아리아와 어울려 우리 고유의 단순한 흥겨움이나 신바람 문화 이상의 것을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이 오페라에는 아름답고도 절절한 아리아가 많아 아름다움을 더했는데, 특히 허 생원이 과거 한순간의 사랑을 회상하면서 부르는 아리아나 여인과 함께 부르는 이중창은 누구나 아련하고도 아픈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고, 조 선달이 부르는 아리아도 마치 무엇인가를 붙들려고 하지만 결코 다는 잡히지 않는다는 우리네 인생살이의 안타까움을 스케치하듯이 잘 보여 주었다.(나는 이 부분에서 눈시울이 약간 붉어지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대사와 음악이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모든 아리아들은 서양의 어느 유명 오페라 아리아에 견주어도 결코 손색없는, 아니 더 뛰어난 예술성을 담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제 오페라도 점진적으로나마 한류(韓流)를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또한 마치 온 천지에 '소금 뿌린 듯한' 메밀꽃과 그 메밀꽃 위로 교교히 비치는 달빛을 그린 무대장치나 무용수들의 탁월한 예술적 감각은 이 오페라를 든든히 뒷받침해 주고 있었고,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기량이나 연기 등은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였다.

오페라는 말 그대로 극적인 요소가 강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충격적 스토리나 반전이 없는 오페라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자명(自明)하는 오페라가 바로 이 '메밀꽃 필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의당 좋은 예술 작품은 그 감동이 우리 마음속에 깊이, 그리고 오래 남아 있어야 한다고 믿는데, 이 작품은 그날의 여운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으니 말이다. 아픈 듯 만 듯….

조주태(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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