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저수지

# 저수지

-손순미

저렇게 무거운 남자를 떠받치고 있었다니! 고작해야 똥방개, 소금쟁이, 개구리밥이나 띄우고 바람의 물결이나 만들어내던 저수지가, 돌멩이를 아무리 던져도 싱겁게 웃기만 하던 저수지가 천하장사보다 센 힘으로 익사체를 힘껏 떠받치고 있다 익사자는 자신의 마지막을 아내보다 사장보다 저수지에다 심경을 고백했을 것이다 익사자의 와이셔츠는 빵빵하게 부풀어 있다 봄은 오도 가도 못하는데 오늘 저수지의 책임은 저 와이셔츠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햇살이 달려오고 경찰이 달려오고 와이셔츠의 죽음은 운반되었다 그제야 힘을 뺀 저수지가 모처럼 헐렁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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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와 익사자와의 관계는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원하지 않았겠지만 저수지는 원래의 기능 외에 또 하나의 일을 담당하게 된 셈이다. 익사자도 죽음 직전까진 건강한 남편, 멋진 아버지였을 터인데 무엇이 그를 저수지로 이끌었던 것일까.

죽음에 대한 발단은 물론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이다. 주머니 가득 돌멩이를 넣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은 미화되어 있기도 하지만, 더 견딜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선택하는 죽음들은 살아남은 자의 고통으로도 전이되는데.

산등성이 외눈처럼 박혀 있는 저수지에 잠긴 저 익사자, 무엇보다 "자신의 마지막을 아내보다 사장보다 저수지에다 심경을 고백했을 것"이라는 대목이 아프다. 현대인의 고독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마지막을 누구에게 고백할 것인가. 자신의 비참을 고백할 누군가가 있기는 한 것인가. 죽음은 설명이 아니라 현상이다. 그리고 어쨌든 죽음은 고독한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멋대로 죽음을 재구성하지 않아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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