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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습지 연꽃단지 농약공장 폭발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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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약품 스며들어 '시들시들'

농약공장에서 화학물질이 유출된 대구 동구 대림동 연근재배단지 피해현장에 7일 오후 연잎이 시들어 말라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농약공장에서 화학물질이 유출된 대구 동구 대림동 연근재배단지 피해현장에 7일 오후 연잎이 시들어 말라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7일 오후 대구 동구 대림동 안심습지 옆 연근 재배단지. 허름한 공장 건물을 마주한 연밭 주변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분홍 꽃과 초록 연잎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불에 탄 것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폭 1m 남짓한 좁은 길을 따라 연밭 안쪽으로 들어가자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갈색 물결이 곳곳에 번져 먼 곳에 있는 건강한 초록 연잎들과 대조를 이뤘다. 공장 근처 나무 수십 그루도 갈색으로 변했다.

연근 농사를 짓는 40대 주민은 "약 2년 전부터 생산을 중단한 농약 공장이 있는데 며칠 전 거기서 이상한 물질이 흘러나와 연밭을 망쳐버렸다"며 "연잎이 다 말라죽었으니 연근이 잘 자랄 리가 없다"며 한숨지었다.

이번 사고는 4일 오후 2시쯤 농약업체인 제일화학 공장에서 시작됐다. 연밭 농가 주민들은 "공장 주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제일화학 측에 문제를 제기했고, 회사 관계자는 냄새의 원인이 공장에서 사용하는 '액화염소가스'라고 파악했다. 하지만 허술한 안전관리 탓에 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5일 오전 9시쯤 액화염소 200ℓ가 담긴 가스통에서 가스 3분의 1가량이 흘러나와 바람을 타고 일대에 퍼지면서 인근 연밭은 쑥대밭이 돼버린 것. 피해 면적은 1만여㎡에 이른다. 이달 연근 수확을 앞두고 있는 농가 9곳이 피해를 입었다. 5일 동구청과 한국가스안전공사 직원들이 원인 파악을 위해 현장을 찾았고, 오랫동안 방치된 가스통이 더운 날씨에 갑자기 팽창하면서 녹슨 밸브가 열려 가스가 샌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날 동구청이 대기 중 농도를 측정한 결과 치사량 293ppm에 못 미치는 0.2ppm 정도로 나타났다. 강력한 산화제인 염소는 살균과 소독제로 주로 사용되며 이 업체가 생산하는 농약 '파라티온'의 주성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염소는 과량 흡입시 호흡곤란과 폐손상 등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동구청 관계자는 "무더운 날씨에 노후화된 시설에 문제가 생겨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5일 사고 현장에 있던 가스통을 모두 제거했다"며 "제일화학이 2009년부터 농약 생산을 중단했다고는 하지만 폐업신고도 않았을뿐더러 농촌진흥청에 농약생산업체로 등록돼 있어 제재를 가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주민들은 피해액을 1억5천여만원 정도로 계산하고 제일화학이 피해 농가에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일 연근 수확을 앞두고 있는 주민 B(45) 씨는 "연근은 잎이 마르면 뿌리가 영양분을 얻을 수 없어 농사를 망친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보통 3.3㎡당 5만~6만원 정도 수익이 난다"고 말했다.

반론을 듣기 위해 기자가 8일 제일화학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제일화학과 피해 농가들은 이날 오전 보상 문제를 놓고 협의에 들어갔다. 전체 면적이 55㏊에 이르는 대림동 연근 재배단지는 연간 1천200t을 생산, 전국 최대 연근재배단지로 손꼽힌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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