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는 한국전쟁 중이었다. 수시로 낯선 외국 구호물자들이 우리 교실에 쌓였다. 블루진 바지, 체크무늬 윗도리 등의 각종 의류에서부터 요요, 고무공, 팽이 등의 장난감. 야구 글러브. 카드 그리고 초콜릿, 크래커 등의 과자를 담임 선생님이 한아름 안고 교실로 들어서면 우리는 모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선생님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항상 정해진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받고는 했다.
중학교 시절에도 그 구호품들이 들어왔다. 전쟁이 끝나고 안정이 된 탓인지 물건들의 가지 수나 양은 전보다 휠씬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겐 무척이나 갖고 싶은 물건들투성이였다. 그러나 그 구호품들은 초등학교 때는 집안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주었고 중학교는 청소년 적십자 회원들에게만 주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청소년 적십자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외제 구호물자를 타 보려는 욕심에서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부터는 구호물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주 새벽에 불려나가 빗자루를 들고 시내에 청소를 하러 다녔다. 이런 식으로 나는 본의 아니게 일 년 동안 봉사 활동을 한 뒤 2학년부터는 그 모임에 가지 않았다.
만약에 적십자 경북지사 김영길 사무처장이 그때도 적십자에 근무했다면 내가 고1 때뿐만이 아니라 그 후 계속 적십자 봉사원 활동을 했을 것이다. 김 처장은 16년 전부터 청소년 적십자회원들에게 나중에 어른이 되면 회원들끼리 서로 결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공약을 하고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청소년기에 같은 이념을 가진 학생들에게 건전한 이성교제를 주선해주고 그리고 그들이 한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봉사원의 길이 아닐까?
참 아쉽다. 내가 좀 늦게 태어났더라면 지금쯤은 같은 회원이었던 여학생을 만나 진정한 봉사를 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인데 다만 구호품에 눈이 어두워 이리 힐끔 저리 힐끔한 내 어린 시절이 무척도 부끄럽다.
권영재 미주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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