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던 장마가 끝이 나니 삼복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복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보양식이 아닐까 싶다. 삼복 가운데 첫 더위를 알리는 초복(初伏)과 중복(中伏)이 지났지만 올해는 장맛비로 인해 날씨가 덥지 않아 음식점들은 복날 특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고 울상이다.
과연 복날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똑 떨어지는 이야기는 없다. 국립박물관의 세시풍속 소개에서도 복의 어원에 대해서는 신빙할 만한 설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주위에 전해지는 복날의 정의와 유래를 보면 제법 있음 직하고 저마다 그럴듯해 보인다.
복날의 복(伏)자는 '엎드릴 복'자를 쓴다. 말 그대로 '굴복하다'는 뜻인데, 그래서 복날의 의미가 여름 더위를 굴복시키는 날이라는 해석이 있다. 즉 더위를 피하기보다는 정복하라는 의미인 셈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설도 있다. 엎드릴 복자를 쓰는 것은 더운 날씨에 개가 혓바닥을 드러내며 엎드리고 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다. 이것 역시 그럴듯한데, 진위는 알 수가 없다.
우리 조상들은 삼복더위를 이기기 위해 생활 속에서 터득한 지혜를 실천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시원한 모시적삼을 입고 합죽선을 설렁설렁 부치며 더위를 쫓았다. 모시는 쐐기풀과에 속하는 모시풀의 속껍질을 갖고 만든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천연섬유다. 잠자리 날개옷이라고 불릴 만큼 촉감이 차갑고 빨리 말라서 여름철 더위를 이기기에는 그만이다. 또 밤이 되면 고슬고슬 풀 먹인 삼베 요 위에서 죽부인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찬 기운을 갖고 있는 대나무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깜짝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더운 날씨는 짜증을 부르기 십상이고 자칫 건강도 해치기 쉽다. 예로부터 복날에 보양식을 즐겨 먹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래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생닭과 인삼, 황기, 찹쌀 등을 넣어 끓인 삼계탕이나 보신탕 등으로 건강을 챙겼던 옛 풍습을 보면 우리 선조들의 여름나기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복날의 식탁 풍경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맞벌이 가정과 나홀로 가정이 많아지면서 대형소매점이나 편의점에서 포장용 간편식 삼계탕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일일이 재료를 사서 끓여 먹는 것보다 이미 조리된 채로 파는 간편식도 많이 찾는다. 게다가 음식값이 줄줄이 오르면서 웬만한 유명 삼계탕 집은 1만원대를 훌쩍 넘어섰다. 자연히 가정간편식 삼계탕을 찾는 사람들이 늘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복날에 먹는 보양식도 요즘 시대에 걸맞게 바꾸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야 지금보다 먹을 게 많지 않았고 개인의 영양 상태도 썩 좋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영양을 보충하기 위한 보양식이 필요했다. 더욱이 무더운 여름철에는 상대적으로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보양음식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대부분 끼니마다 풍부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시대에 굳이 보양식이 필요할까. 오히려 영양 과잉이 염려되는 상황인데, 보양식의 기준도 자연스럽게 바뀌는 게 맞다. 오는 말복(末伏)에는 단백질이나 지방은 가급적 자제하고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진짜 보양식을 권한다.
(구미 탑정형외과연합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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