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늦더위

올해는 참으로 별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이렇다 할 열대야(熱帶夜) 없이 내일이면 말복을 맞게 된 것이다. 입추는 지났고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도 열흘 남짓 남았다. 장마에다 태풍, 그리고 게릴라성 폭우가 몇 차례 지나가고 나니 제대로 된 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하한기 끝자락에 닿아 있다. 사실 올여름은 불볕더위 쨍쨍한 날이 손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지긋지긋해야 할 여름이 수월하게 넘어가는 것 같지만 '여름다운 여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대구시는 올여름에 대비, 신천 상동교와 파동교 상류 지점에 '강수욕장'을 개장했다. 가창댐 맑은 물 덕분인지 지난해에는 어린이와 시민들의 인기를 얻었는데 올해는 잦은 폭우로 이틀이 멀다 하고 폐쇄돼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폭우 덕에 모기들의 습격은 줄어든 것 같다.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는 물이 고인 연못이나 웅덩이에서 잘 자라는데 비가 자주 내린 덕분에 그렇게 모기가 극성스런 여름이 아니었다.

뙤약볕을 좋아하는 매미들은 올여름 날씨에 불만이 많을 것이다. 매미 소리가 예년 같지 않다. 사이렌 소리를 내는 바람에 밤잠을 설쳐야 했던 말매미 울음소리도 많이 줄어든 것 같고, 매앰~ 매앰~ 울어대는 참매미 소리도 데시벨이 뚝 떨어졌다. 매미 소리는 수컷이 짝을 찾는 구애행동인데 올해는 마음대로 울지 못해 내년에 매미의 개체 수가 뚝 떨어질까 걱정이다. 이뿐만 아니다. 채소류 같은 밭작물과 과일이 흉작이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예년보다 추석이 한 달이나 앞당겨져 서민들은 차례상을 어떻게 차려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시원한 것도 좋지만 역시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 릴케의 여름을 찬미하는 시 '가을날'이 오히려 그립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시인은 친절하게도 위대하지 못한 여름을 보내는 대가(代價)가 어떤 것인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라'는 기도처럼 어째 막바지 늦더위라도 기승을 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는 참으로 별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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