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선택과 합의

민주사회에서 국가 경영의 근간은 선택과 합의다. 국민이 국정을 대신 할 인물을 선택하는 것과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국정이 핵심이다. 국민의 대표들 즉 대통령과 국회의원, 공직자를 뽑을 때 현명한 선택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비전과 리더십, 도덕성 등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철저히 가려 뽑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선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국정이 문란해지고 국가 경영은 순탄할 수가 없다.

국정 추진도 마찬가지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국민과의 소통은 물론 반대 세력과의 대화 능력이 떨어지면 국가 경영의 추진력을 잃게 된다. 이를 흔히 가치의 충돌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권력투쟁의 빌미를 주게 된다. 민주주의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아니면 독재 국가든 관계없이 극심한 가치의 충돌과 대립은 보다 나은 새로운 가치의 창출보다는 혼란과 정체를 먼저 부르게 된다.

올바른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국가 경영이 잘되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그만큼 개개인의 가치와 의식이 다양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중요 현안에 대한 지도자의 판단과 국민의 생각이 다르다면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구성원 대다수가 타당하다고 인정하는 방식이어야 뒷말이 없고 성과도 좋은 법이다. 일단 합의된 정책은 일부의 불만이 있더라도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선택과 합의라는 기본 룰이 흔들리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반값 등록금과 무상 급식 등 양극화 문제와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논란, 북한 문제, 일본의 독도'동해 도발 등 현안에서 국가 경영의 룰이 깨지면서 중심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국민 대표자들의 경영 능력이 모자라거나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부족이 그 원인이다. 현안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르고 이념과 권력욕까지 개입하면서 합의는 아예 실종됐다.

무엇보다 공동선(共同善)에 대한 의식과 믿음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사사건건 여야가 충돌하고 세 불리기에 혈안이 되면서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무엇이 국가이익에 부합하는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선택과 합의의 절차를 밟아온 서구 사회는 다원주의하에서의 공동선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실험해 왔다. 가치가 대립할 때 항상 먼저 공동선의 유지와 작동을 염두에 두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처럼 공동선은 정파적 이해나 집권 의지를 초월하는 주요 명제다.

어느 사회든 무능한 정부도 문제지만 국민을 기만하고 갖가지 삿된 수법을 동원해 국정을 농단하는 정당이나 세력은 큰 화근이다. 소위 '맥거핀'(Macguffin)이라고 불리는 속임수를 동원해 질서를 뒤흔드는 부류다. 이들은 여론 조작을 통해 시선을 엉뚱한 쪽으로 돌리는 사회심리적 적대를 만들어낸다. 맥거핀 효과를 노린 것이다. 맥거핀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의 줄거리를 긴박하게 전개시키거나 관객이 줄거리를 따라잡지 못하게 고안한 극적 장치다. 말하자면 속임수나 미끼다. 째깍거리는 괘종시계나 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이나 커튼 등이 극 중간 중간 앵글에 잡히면 관객들은 불안해진다. 영화의 본질과 상관없으나 관객의 심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맥거핀은 극의 진행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 버리면서 관객이 헛다리를 짚게 만든다.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가치와 본질을 왜곡하고 새로운 적대를 만들어 내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 어느 집단이든 맥거핀 효과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주류는 맥거핀을 교묘히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를 비판하고 국정을 흔드는 비주류 또한 속임수나 미끼를 동원해 반사이익을 노리는 데 익숙해 있다. 복지 포퓰리즘이나 희망버스'해군기지 반대 쇠사슬 투쟁 등이 그런 예다. 문제는 무리한 정책 추진과 이를 반대하는 극한투쟁의 결과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 그 책임을 떠안게 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우리 역사에서 권력투쟁과 이념 논쟁에서 늘 볼모가 된 것은 국민이었다. 이제는 국민과 국가라는 공동선에 기반한 가치를 국정에 철저히 반영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공동선이 배제된 국가 경영은 실패를 부르고 그 후유증은 국민 모두가 부담해야 하는 과오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徐琮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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