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과 싸우던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결국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비를 구하러 온 칼레 사절단에 영국 왕은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책임자 6명의 처형을 요구했다.
그때 가장 먼저 희생을 자처한 사람이 칼레시의 최고 부자 생 피에르였다. 그리고 시장과 상인, 법률가 등 귀족들이 스스로 교수대로 향했는데, 임신한 영국 왕비의 간청과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복한 영국 왕이 이들을 살려주게 된다.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상징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프랑스 격언은 사회 지도층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대 로마 사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불문율이었다. 상류층의 자발적인 전쟁 참여는 물론 공공 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행위가 지극히 명예로운 것으로 인식되었다. 로마제국이 흥성한 원동력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에서는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천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차남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6'25전쟁 때에는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0여 명이나 참전해 3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 폭격 임무 수행 중 전사했으며,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의 아들도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는 우리 역사에도 적잖다. 제주도 사람을 기근에서 구한 거상 김만덕, 100리 안에는 굶는 사람이 없게 하려 했던 경주 최부잣집, 모든 가산을 정리해 만주로 집단 망명했던 안동의 독립운동가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 현대사는 이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며 반공을 핑계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탄압했다. 권력층과 대기업의 도덕성 결여와 천민자본주의의 횡행은 고도 경제성장 속 우리 사회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실패와 북한 체제의 왜곡에도 불구하고 종북 세력이 건재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공생발전'을 강조했고, 정몽준 의원과 현대가족이 5천억 원 규모의 사회복지재단을 만들기로 했다.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반가운 처방들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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