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편이 넘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봤을 때 사극은 없었다. 멜로, 스릴러, 드라마, 미스터리, 코미디, 모험 등 다양한 장르에서 특별한 매력을 선보인 그였지만 사극은 처음이다.
배우 박해일(34)이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콧수염을 기른 조선 최고의 신궁 '남이'로 변신했다. 역적으로 몰린 아버지는 죽고 누이 '자인'(문채원)의 행복만을 바라며 살아온 '남이'. 병자호란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배경으로 청나라의 포로가 된 누이를 구하기 위해 활 한 자루를 들고 전쟁을 시작한다.
동생을 빼앗겨 분노한 오빠 박해일의 모습은 스크린을 꽉 채운다. 이렇게도 멋지고 늠름한 역할을 하기 위해 그동안 다른 작품들을 고사한 것일까. 박해일은 "사극은 국내 배우가 한 번씩 거치게 되는 장르"라며 "내심 기다리고는 있었는데 이번에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다"고 웃었다.
"사극이 잘 어울릴 것이라고 저조차 생각을 못했어요. 몇 번 시나리오가 들어오긴 했는데 '극중 내 자신을 어떻게 찾을까'에 답을 못했죠. 그러다 김한민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한 작품(극락도 살인사건'2007)을 같이 해서 친근하기도 했고, 이야기 자체도 거부감이 없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첫 도전하는 사극이라 적응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박해일은 특히 수염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촬영 초반에는 수염이 한 가닥씩 치아 사이에 들어가 불편했어요. 그래도 산을 뛰어오르고 계속 달리다 보니 힘들어서 수염 같은 건 잊게 되더라고요."(웃음)
말을 타면서 활을 잘 쏘는 남이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촬영 3개월 전부터 특별훈련을 받았다. "여러모로 준비해야 했어요. 일종의 사관학교처럼 추운 겨울에 말 타면서 떨어지고, 활 쏘는 법 배우고, 또 지금은 거의 사라진 만주어를 합창하면서 따라했다니까요."
박해일은 특히 "시행착오를 하고 몸으로 느끼면서 배웠다"고 회상하며 "만주족도 변발까지 하며 제대로 표현하는데, 조선의 신궁이 장난치면 안 될 것 같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언과 교정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사극 경험이 있는 류승룡(41)의 도움이 커 즐거운 현장이었다. 그는 "류승룡 선배의 만주어 목소리가 진짜 잘 어울렸다. 지금은 만주어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지만, 류 선배가 몽골에서 그 말을 하고 있으면 진짜 그곳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라며 웃겼다. 물론, "청군의 수장이라 위엄한 모습을 보이고, 웃기지 않으려고 자제하려고 노력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극중 문채원(25)이 KBS 2TV 드라마 '공주의 남자'로 정통 사극은 아니지만 사극에 또 도전했다고 하자 박해일은 TV 채널을 돌리다가 이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최종병기 활'에서 문채원이 맡은 캐릭터는 항상 구르고 넘어져 깔끔하지 않아요. 그런데 TV를 보고 '아, 이 친구가 원래는 깔끔한 애였구나, 청초하구나' 했어요. 극중 초반에 시집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괜찮은 모습은 못 봤는데 '무척 곱다' 했죠. 독기 있는 눈만 보다가 한없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큰 눈망울을 봤어요. 같은 사극인데 너무 다르더라고요."(웃음)
박해일은 "문채원이 우리 영화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며 "아름답고 깔끔한 본연의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안쓰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작품에서는 연인으로 나오는 건 어떻겠냐고 하자 고개를 가로젓는다. "채원 씨와 관계는 누이동생과 오빠로 찍혀버렸어요. 연인으로 나오면 팬들에게 못할 짓인 것 같아요. 또 주변에서는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가족 같기도 하고…."(웃음)
박해일은 김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짜 녹여냈다고 자신했다. 그는 현장에서 김 감독이 머리에 쥐가 난 위험한 상황에서 류승룡이 바늘로 머리 곳곳을 따야했던 상황도 전하며 "김 감독도 자기 한계의 최대치를 시험한 영화"라고 대변했다.
그래서인지 여름 시즌 블록버스터 영화가 많이 나와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말에는 강한 자신감이 서려 있다.
"대결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부담감도 있고 맥도 빠지잖아요. 공생한다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식당가면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이 있잖아요? 해외 영화도 물론 많지만 한국영화를 골고루 봐주면 감사한 일이죠."(웃음)
박해일은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MBC'2004)
이라는 작품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그외에서는 당최 TV에서 얼굴을 볼 수 없다. 박해일의 팬이라면 그의 TV 나들이가 반가울 수도 있겠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는 "성격상 하나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고 다른 것을 함께할 때는 무척 느리다"며 "하던 거라도 잘 하자는 마음가짐"이라고 웃어넘겼다.
"드라마를 못 한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영화 쪽에서 더 해야 될 게 많은 것 같고, 또 드라마와 영화 시스템적인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잘 못하겠더라고요. 매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평균 6개월 정도를 100여 명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요. 다른 영화에 들어가면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잘 가더라고요. 영화를 하다보면 생각할 것도 많아지고, 그러면 다시 또 어느덧 개봉이고요. 그렇게 시간이 가니 영화 시스템과는 다른 드라마를 하는 건 조금 버거운 것 같아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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