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필기(34'안동시 북문동) 씨는 '스토리텔러'라는 낯선 명칭으로 불린다. 창이나 판소리를 하는 전통문화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대연극을 하는 배우도 아니다. 하지만 무대에 서서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한다. 그의 임무는 공연을 훨씬 맛깔지게 만드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듬뿍 썰어 넣어도 국물맛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으면 음식의 참맛을 내기 힘들 듯, 그는 극의 시작과 중간 중간 등장해 탁월한 말솜씨와 구수한 안동 사투리로 극을 해설해주고 관객과 무대 사이를 한데 엮어준다. 극의 전체적인 구성을 한층 잘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전통문화의 도시 안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탈춤을 추고, 뮤지컬의 스토리텔러로, 사투리 진행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안동을 알리는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우연히 시작된 탈춤 인생
필기 씨는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다. 이달 말까지 매주 5차례 하회마을에서 공연을 한다. 배역은 그때그때 다르다. 소 뒷다리나 소머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주지탈(풍년과 다산을 의미), 백정(소를 때려잡아 염통을 떼서 장사를 함), 이매(턱이 없는 바보 탈)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매일 오후 2시 시작되는 공연을 위해 1시까지 하회마을 입구에 있는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으로 배우들이 모여든다. 그러면 징소리가 울리고, 전수관에 그날 공연에 참여할 배우들이 모여앉아 역할을 배분하게 된다. 보통 20명 남짓이 모여들지만 요즘같은 휴가철에는 예상치 않게 빠지는 인원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그날의 인력 상황(?)에 따라 배역이 조금씩 바뀐다. 이 때문에 탈춤 배우들은 1인 3, 4역은 기본이라고 했다. 특히 인간문화재 선생님은 9개 역할 모두를 해내는 '만능인'이다. 필기 씨는 "처음에는 어깨춤도 어색했지만 10년 넘는 세월을 인간문화재인 이상호'김춘택'임형규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다 보니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고 했다.
필기 씨의 입담은 탈춤 공연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마이크를 잡고 일단 좌중의 주목을 한데 모으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간단한 영어와 일어 소개로 외국인까지도 세심하게 챙긴다.
그의 탈춤 인생은 우연한 기회에서 시작됐다.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민속반'에 가입하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탈춤을 배웠다. 사실 그는 내심 컴퓨터반에 들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컴퓨터반을 지원하는 학생이 많다 보니 선생님이 어거지로 일부 학생들을 민속반으로 배치하게 되면서 그의 탈춤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시골에서 초'중학교를 댕기다 보이 고등학교 가가 처음 컴퓨터라는 거를 봤는데 나도 컴퓨터를 배웠으마 하는 환상이 있었디랬니더. 그란데 선생님께서 '컴퓨터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는 학생들은 민속반으로 가라'고 하시디더. 그래가 어쩔수 없이 시작하게 됐니더."
처음에는 북치고 장구치고, 탈춤을 추는 일이 별로 좋지 않았다. 더군다가 민속반은 소위 '껄렁한' 학생들이 주를 이뤘다. 그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던 중 한 선배를 만나면서 그의 새로운 탈춤 인생이 시작되게 된다. "전교 학생회장 선배가 있었띠랬는데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 악기까지 잘하는 기라. 그걸 보고 나도 한 번 선배처럼 잘 해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니더."
본격적으로 탈춤 바닥에 뛰어든 것은 군대를 다녀온 후의 일이다. 탈춤을 먼저 시작했던 한 선배가 "젊은 우리가 탈춤을 한 번 이끌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하면서 제대로 마음먹고 탈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구수한 입담의 스토리텔러
그가 본격적으로 '스토리텔러'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김준한 안동영상미디어센터 이사장이 퇴직 후 고향인 안동에 내려와서 안동의 전통문화와 자연유산을 이용한 '산수실경 국악뮤지컬'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그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 것.
"하루는 관광객을 델꼬 탈춤 강습를 하고 있었띠랬는데 이사장님께서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셨는모이래요. 저를 부르시더니 '고향에서 뜻있는 일을 하려고 하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 3년만 고생해보자'고 하셨니더. 그냥 공연을 하게 되면 장면과 장면 사이가 어색하고 관객들이 지루해하는 문제가 있는데, 재치있는 입담이 곁들여져서 설명을 해주면 한결 재미있는 공연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 이사장님의 새로운 아이디어였띠랬지요."
이후 매년 1편의 국악뮤지컬이 안동에서 탄생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이 '사모-퇴계선생의 450년 사랑'이었고, 두 번째 작품이 지난해 무대에 올린 '락-나라를 아느냐', 올해 조만간 '왕의 나라'가 막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안동댐 안의 민속관광지와 고택을 배경으로 전국 최초의 실경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공연에서 필기 씨의 역할은 사회자이자 진행자요, 해설자이면서 재담꾼이다.
"처음에는 스토리텔러 역할이라는 것이 영 낯설었는데 자꾸 무대에 오를수록 욕심이 생겨가 더 많은 준비를 하게 됐니더. '퇴계 선생이 1501년에 태어나셨띠랬고, 1570년 세상을 떠나셨다'가 다음번 공연 때는 '1501년 11월 25일 태어나셨띠랬고, 1570년 12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라는 식으로 점점 구체화를 시켰지요. 덕분에 자료도 마이 찾고 공부도 마이 하고 있니더."
◆사투리는 나의 힘
그는 안동에서 '유명인사'다. 운전을 하면서도, 식당에서도 연신 인사를 하며 안부를 주고받기에 바빴다. 인터뷰를 위해 그의 일터인 안동시청 인근 여행사 사무실을 찾은 날도 쉼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찾아오는 손님으로 정신이 없었다. 이날 사무실을 찾은 이는 그의 동네 후배. 아이의 돌잔치 사회를 부탁하기 위해 부인와 잠시 짬을 내 들른 것이었다. 그는 벽에 적힌 일정을 확인보더니 흔쾌히 사회를 수락했다. 그는 "촌동네 있다고 우스워뵈겠지만, 이 동네에서는 나름 잘 나가는 사람입니다"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는 안동에서 가장 각광받는 사회자로 손꼽힌다. 축제에서도, 돌잔치나, 환갑잔치에서도 그의 입담이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쩜 그리 술술 달변이 흘러나오는 건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저도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다"고 했다. 자꾸 사람들 앞에 설 일이 생기다보니 조금씩 말주변이 늘었고, 그러다 보니 좀 더 나은 언변을 구사하기 위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
일례로 얼마 전 있었던 영주 세계유교문화축전 사회를 위해 그는 미리 영주를 답사하고 지역의 문화재와 각종 설화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소수서원, 부석사 등의 역사적인 유적과 금성대군과 단종에 얽힌 역사적 스토리, 영주의 대표적 인물 안향과 정도전에 대한 각종 설화까지 빠지지 않고 챙겨 이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는다. 그리고 행사 중간중간에 '이별' 스토리가 나온 뒤 해금 공연이 이어지는 식으로 전체적인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이야기를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실 그는 준비된 '이야기꾼'이었다. 2002년 안동 MBC에서 열린 전국 사투리경연대회에서 동상을 탔고, 2009년 9월 경주에서 열린 경북방언 경연대회에서 일반부 대상을 탈 정도로 걸쭉한 입담을 지니고 있었던 것.
"요새 젊은 사람들은 사투리를 쓰마 부끄럽다꼬 마이 생각하는거 같은데 사투리가 왜 부끄러운 거이껴? 애끼고 사랑해야 할 우리의 전통문화씨더. 요새는 젊은이들이 표준어 사용을 선호하이께네 자꾸 사투리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이 안타깝니더. 아마 10년 후면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니더."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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