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삶의 질

지난 5월 북한 조선중앙 TV는 희한한 자료를 발표했다. 전 세계 국가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중국이 지수 100점으로 가장 행복한 국민이 사는 나라로 선정됐고, 북한은 98점을 얻어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3위가 쿠바(93점), 4위가 이란(88점), 5위가 베네수엘라(85점)였다. 반면 한국은 18점으로 152위였고, '미제국'(美帝國)은 203위로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만히 보면 북한과 친소(親疎) 관계의 정도에 따라 순위가 매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물 안 개구리'인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면 이런 결론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행복은 너무나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딱히 비난할 여지도 없다.

그런데 세계 10대 경제권을 넘나드는 한국은 '행복지수'라는 말만 나오면 주눅이 든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한국인의 삶의 질을 조사한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포함한 주요 39개국 가운데 27위(2008년 기준)로 절대 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런 순위가 2000년 이후 거의 변함이 없다는 데 있다. 이 보고서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급격히 증가했는데도 삶의 질에 대한 만족도는 정체하고 있어 '이스털린의 역설'(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이 정체되는 현상)이 적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득 증대가 행복의 '0순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과 '삶의 질'의 상관계수는 0.7로 매우 높다고 한다. 하지만 1인당 소득이 1만 3천 달러를 넘어선 나라들 사이에서는 그 상관관계가 희미해진다. 그리고 소득이 1만 5천 달러를 넘으면 행복은 소득과 거의 무관하다고 한다.

그러면 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이미 어린 시절부터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방정환재단이 지난 5월 전국 초중고생 6천410명을 대상으로 벌인 '대한민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 조사 결과, 66점을 얻어 OECD 회원국 23개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행복'이라는 자양분을 받지 못하고 자란 새싹들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삶의 양(量)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삶의 질(質)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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