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처럼 펼쳐진 수직의 낭떠러지 아래 큼지막한 바위들이 물살을 거스른 채 파도를 맞고 있다.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바위벽과 파도치는 바닷가의 모습을 작은 소품 속에 웅혼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절벽과 바위 몇 개의 단순한 구성이지만 해안의 단애와 넘실거리는 물결, 그리고 부서지는 파도의 흰 포말까지 빛과 소리, 바람의 장관을 본다.
한지에 먹과 붓을 사용해 그린 수묵담채화인데 절약된 색과 필획으로도 풍광에 대한 무한한 감성을 자극한다. 이 멋진 장르가 오늘날 갈수록 일반의 관심이 낮아지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여전히 그 미학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원래 서화(書畵)라 불리던 우리의 전통 그림이 일제 때 잠시 서부와 화부로 나뉘어 취급되다가 결국 서예와 분리돼 동양화로, 이후 다시 한국화로 그 이름을 바꿔왔다. 아래로 죽죽 내리그은 붓질이 대담하여 힘찬 느낌을 주고 가로로 스치듯 짧게 그은 필획에 의해 비바람에 깎인 바위벽의 모습이 잘 나타났다. 전통 필법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화가 유황 교수의 1997년의 작품인데 지금 옛 상업은행 본점 건물에서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의 빛과 정신'전에 전시 중이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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