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동안 사귀었는데 아무 것도 손에 넣지 못했다
얼음처럼 녹고 흘러내리고 지나간 마음들
눈송이처럼 사라져버린 대화對話
잡으려고 한 적 없으니 사라진 건 당연하다
때때로 내가 내 목을 조르는 꿈을 꾼다
내 손이 스카프처럼 그대의 목을 조를 수도 있으리라
관람객 없는 평일의 극장에서 잠깐 졸았을 때
지나가버린 것은 청춘
남은 것은 패배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깜박하는 사이 시체들이 골짜기에 버려지고
깜박하는 사이 꽃밭이 태어나는 평일의 극장 안
프라하와 아우슈비츠, 박쥐와 마더
맨 뒤 구석자리가 나의 영토일 것
그곳에서 예의를 버리고 그대의 입술에 키스한다
가장 나중까지 남아서
누군가 나를 들어내 버릴 때까지
평일의 극장, 어느 날 당신 내 손을 잡은 적 있었지요. 그날의 영화는 중간 중간 까맣게 지워져 기억나지 않아요. 이 시를 읽으니 종로의 한 극장, 동시상영하는 극장에서 요절한 한 시인 생각도 나네요. 평일의 극장 한 구석에 구겨지는 인생이란 너나없이 쓸쓸한 존재 아닐까요.
극장이란 공간, 참 다면적이에요. 뭔가 즐겁기도 하고, 불온하기도 하고, 한시적으로 자유롭게도 하는 그 공간. 더구나 객석이 텅 빈 평일의 극장에선 혼자 목을 졸라도 모르겠고, 눈 딱 감고 누군가와 키스를 해도 모르겠고.
그게 현실인지 영화장면인지 뭐 중요하겠어요? 영화는 끝났고, 십년이나 사귄 당신 주인공보다 초라하다 해도, 흐린 불빛 아래 땟국물 흐르는 현실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해도, 어쩌나요. 청춘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고 얼음은 녹고. 그런데 그때의 당신들 어디 갔나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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