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날다람쥐'로 통하는 이효리의 산행속도는 웬만한 운동선수급. 동행한 코디와 매니저들의 진을 빼놓기 일쑤라는데. 그녀는 원터~매봉 코스를 즐겨 탄다고 한다. S라인 몸매가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이 길을 '효리 코스'라고 부른다. 그런 그녀를 가볍게 추월했다는 연예인이 있으니 잘 알려진 대로 영화배우 전지현이다. 이른바 '효리굴욕' 사건으로 알려진 이날 산행을 분석해 보니 비슷한 코스에서 이효리는 20분, 거리로는 1㎞ 남짓 뒤처졌다. 레이스 중이었다면 추월은 불가능한 거리다. 이효리와 전지현의 날다람쥐 논쟁에서 보듯 청계산엔 많은 연예인들이 찾아온다. 김제동, 김민정, 천정명, 성시경, 이적 등이 고정멤버들이고 고(故) 최진실과 영화배우 장진영도 투병 중 자주 이곳에 들렀다.
◆서울 남부에서 성남'의왕'과천'서초구의 경계=청계산에 연예인들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당연히 도심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청계산은 서울의 남부에서 삼-관-우-청-광(삼성'관악'우면'청계'광교)의 줄기를 이루고 동으로 성남, 서쪽으로 의왕, 북으로 과천, 북동쪽으로 서울 서초구를 4각 분할하고 있다.
주변에 경부고속도로, 도시철도, 외곽순환도로를 끼고 있어 수도권에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1시간 안에 입산이 가능하다. 강남에서는 30분, 성남에서도 15분이면 등산로에 닿을 수 있다. 연간 등산객이 500만 명을 넘고 휴일에는 6만 명 이상이 산을 찾는다.
청계산은 계곡이 많아 청계(淸溪)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 과천읍지에는 이 산을 청룡산(靑龍山)으로 적고 있는데 이는 관악산을 주산(主山)으로 볼 때 왼쪽에 있는 청계산이 좌청룡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4개 자치단체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덕에 등산로도 4곳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일반적으로 의왕에선 원터, 성남에서는 옛골, 과천에서는 서울대공원, 서초구에서는 청계골'원터골을 들머리로 잡는다.
오늘 취재팀의 들머리는 청계사. 청계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세워진 사찰로 조선시대 연산군이 도성 내에 있는 절을 모두 폐쇄했을 때도 봉은사를 대신해 선종의 본산으로 정해졌을 정도로 유서 깊은 절이다.
이수봉 쪽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전형적인 육산. 푹신한 흙길과 상큼한 솔향에 더위를 털어낸다. 숲길을 한 시간쯤 걸으면 망경대-이수봉 갈림길인 절고개가 나타난다. 정상이 있는 망경대~석기봉을 오른 후 돌아나와 이수봉으로 진행하면 원점회귀 산행으로 최상의 조합이 된다.
망경대의 본래 이름은 만경대(萬景臺). 상봉에 오르면 눈앞에 만경이 펼쳐진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었으나 고려의 충신 조윤(趙胤)이 청계산에 은거하면서 고려의 옛 수도 개성을 바라보며 슬퍼했다고 하여 망경대(望京臺)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태조는 옛 친구였던 조윤을 못 잊어 이곳에 초막을 짓고 입사(入仕)를 권유했으나 조윤은 이름을 개(趙犬)로 바꾸고 멀리 지리산으로 잠적해버렸다.
석기봉은 청계산 최고의 전망대. 정상에 서면 서울대공원, 과천경마장,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정여창 사연 서린 석기'이수봉=석기봉 아래엔 조선 초기 경세가 정여창의 사연이 서려 있는 '금정수'가 흐른다. 사화(士禍)를 피해 청계산으로 들어온 정여창은 금정수에서 은거했다. 얼마 후 사화에 연루된 그가 사약을 받게 되자 샘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망경대를 넘어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혈읍재(血泣峙)가 나온다. 정여창이 스승 김종직이 부관참시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넘었다는 고개다.
일행은 다시 정상에서 발길을 돌려 이수봉으로 향한다. 길은 다시 급강하하고 한바탕 능선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면 이내 이수봉 갈림길이 나온다.
이수봉에서 다시 정여창의 일화와 만난다.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꾸던 일두는 무오사화에 연루되었으나 청계산에 은거한 덕에 두 번이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후에 스승 김종직을 따라 부관참시 되는 비운을 맞기는 했지만…. 후학인 정구(鄭逑)가 이를 기려 이수봉(貳壽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이수봉은 산의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어 산 속 교차로와 같은 곳이다. 이 덕에 등산로는 잘 정비되었고 봉우리에도 멋진 기념탑이 들어섰다.
이수봉에서 남쪽을 내려다보면 아담한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국사봉이다. 보통 한문으로 '國師峰'으로 쓰는데 여기는 '國思峰'을 쓴다. 이 역시 고려 유신들의 흔적이다. 이 산엔 앞서 언급한 조윤 외에 목은 이색, 변계량도 은거했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생명처럼 여기는 학자들에게 새 왕조 참여는 죽음과 같은 일이었다. 이들은 산자락에 옛 왕조의 흔적을 남기며 수절(守節)의 결심을 다졌던 것이다.
◆청계산 은둔자들 목숨 걸고 고려왕조에 수절=다시 절고개를 지나 청계사로 내려온다. 절 밑에 '초당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옛 왕조 끌어안기에 공을 들였다. 아직 역성(易姓)혁명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명망 있는 고려의 학자, 관료들이 포섭 1순위였다.
태조는 이곳에 초막을 짓고 청계산에 은거한 고려 유신들을 회유하러 오곤 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인재를 아끼고 중용하려는 군왕의 노력과 구왕조와의 신의를 위해 고난을 자초하는 절사(節士)들의 충절이 만난 곳이다.
사료를 찾아봐도 은거했던 선비들이 새 왕조에 투항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청계산 은둔자들은 죽림7현이나 두문동(杜門洞) 유신들처럼 절의를 끝까지 지켰던 것이다.
이제 일행은 청계계곡을 빠져나와 귀갓길로 들어선다. 혹시나 기대했던 연예인과의 조우는 불발로 그쳤다. 대중스타들이 산을 찾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산이 사람을 가려서 들이지 않듯 연예인들도 일반인처럼 산을 향유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듣기에 이효리는 원터고개~매봉코스를 즐겨 타고 전지현은 예골~매봉에서 많이 목격된다고 한다. 최근 이들의 에피소드가 언론에 알려지고 동선(動線)이 노출되면서 산행도 주춤해졌다고 한다. 혹 산행 중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만 나눌 일이다. 그들이 산에까지 와서 스트레스를 묻혀가지 않도록.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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