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임이 있어서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났다. 반갑게 악수를 하며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뜸, 머리도 길고 흰머리도 너무 많으니 미장원에 가서 염색을 하는 게 어떻겠냐며 권유를 한다. 요즈음 지인들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한두 번 듣는 얘기가 아니라서 그냥 웃어넘겼다. 하긴 거울을 볼 때마다 수염이 있고 나이에 비해 일찍 세어버린 흰머리가 좀 걱정이긴 하다. 하지만 염색은 한번 하긴 쉬워도 계속 하얗게 올라오는 머리카락 염색을 또 해야 하니 면도도 겨우 하는 필자에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40대 초반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은 짧고 단정한 머리와 넥타이를 맨 정장이 떠오를 것이지만 필자를 오랫동안 보아왔던 지인들은 다행히도 예술가란 직업이 갖는 특수성을 조금은 이해하는 듯하다.
주변의 작가들도 하나같이 특이하다. 깨끗하게 다린 옷을 부담스러워 하며 수염은 안 깎기 일쑤고 긴 머리를 파마한 작가와 아예 머리를 민 친구도 있다. 이들에게 왜 그렇게 특이하냐고 물어보면 특별하게 보이고자 일부러 꾸며낸 외모는 아니라고들 한다.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쓴 글 중에 '미술은 없다. 다만 미술가가 있을 뿐'이란 글귀가 있다. 이는 걸작은 모두 미술가의 머리와 손에서 태어나고 그들이 바로 예술과 창작이라는 비밀스러운 세계의 창조자이자 탐험가들이란 뜻이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을 가꾸지 못해 겉모습은 후줄근해지지만 완성되어가는 작품은 점점 만족도가 높아진다. 만드는 재미에 빠져 작품에 예술혼을 불어 넣다 보면 외모를 가꿀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그걸 만드는 예술가를 대체하게 되는 것 같다. 예술가가 남과 다르게 특별히 외모를 꾸미려는 게 아니라 예술가의 혼을 대체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리라.
한 교수님이 예술가의 역할을 낚시에 비유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호숫가에 낚시를 가면 포인트가 있는데 일반적인 낚시꾼은 고기가 잘 잡히는 포인트에 올망졸망 앉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낚시꾼은 그 포인트에 만족하지 않고 고기가 잘 잡힌다는 보장은 없지만 다른 곳에 가서 낚싯대를 드리운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거기서 고기가 잡히기 시작하면 다른 낚시꾼들도 그가 개척한 포인트로 오기 시작한다. 그가 하는 일이 창조적인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말씀하셨다. 일반인들이 생각지 않고 가지 않는 길을 10년을 앞서 가고 50년, 100년을 앞서 가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이처럼 시대를 앞서 가려는 창조자와 탐험가들에게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현재의 유행을 좇아가라는 것은 수용하기 힘든, 불가능한 요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세용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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