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비파열성 대뇌동맥류 진단받은 이남규 씨

"아들 급식비 낼 수만 있다면…" 가난한 아빠의 꿈

이 씨는 6월부터 석 달째 아들 석식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아빠가 됐다.
이 씨는 6월부터 석 달째 아들 석식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아빠가 됐다. "에휴, 몸이라도 성하면 하루에 5만원 못 벌어오겠습니까." 두 달 전 비파열성 대뇌동맥류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뒤 이 씨는 두 자녀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정운철기자

8일 오후 대구 달서구의 한 주택. 이남규(가명'48) 씨의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7월분 석식비 3만1천500원 미납'. 정훈이(가명'17)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이 씨는 6월부터 석 달째 아들 석식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아빠가 됐다. "에휴, 몸이라도 성하면 하루에 5만원 못 벌어오겠습니까." 두 달 전 비파열성 대뇌동맥류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뒤 이 씨는 두 자녀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아빠의 한숨

이 씨 집 앞에는 낡은 1t 트럭 한 대가 서 있다. 녹이 슬어 페인트가 다 벗겨진 트럭 짐칸에는 빈 캔 커피와 담뱃갑 등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번호판까지 찌그러진 트럭은 그의 생활을 반영했다. "트럭 안 몬 지 한참 됐지예. 폐차 시킬라고 해도 돈도 없고." 이 씨의 한숨이 좁은 방안에 가득 찼다.

이 트럭을 몰고 다닐 때 그는 '사장님' 소리를 들었다. 간판 광고업을 하며 두 아이와 아내 굶기지 않을 만큼 돈도 벌었다. 한 번 제작할 때 1천만원을 받는 옥외 간판 주문도 종종 들어왔다. 열심히 하면 '내 집 마련'까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씨도 1998년 외환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외상으로 간판을 제작해 주고 돈을 받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린 고객도 있었다. 배신감보다 더욱 힘든 것은 카드빚이었다. 간판 재료비 결제를 카드로 하다 보니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빚만 차츰 늘어났다. 카드 대금 결제날이 되면 다른 카드로 현금을 인출해 돌려막았고 그러다가 결국 사업을 그만둬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사라진 아내

그래도 아내만은 옆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랬던 아내는 사업이 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을 나갔다. 어디로, 왜 떠난다는 메모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다. 당시 이 씨의 머리에는 '아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 살이 된 딸 혜주(가명)와 여섯 살 난 아들을 노모에게 맡겨둔 채 아내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 씨는 아내의 고향인 포항부터, 서울과 인천 등 전국을 돌아다녔다. 수년을 찾아 헤맸지만 남은 것은 지친 몸뚱어리뿐이었다. "그때 왜 그렇게 살았는지, 지금 애들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납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데 꼬박 5년이 걸렸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훌쩍 커 있었다. 초등학생이 된 딸은 아빠를 알아보지 못했고 아들 정훈이가 그를 기억하고 품에 안겼다. "아빠, 이제 가지마." 아빠가 원망스러울 만도 한데 아들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아들이 붙잡은 손은 그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됐다. 이 씨는 매일 새벽 집 근처 인력시장에 가 일감을 찾았다. 대구와 경북 인근 공사판에서 일하는 날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허탕을 치고 집에 돌아오는 날엔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주말도 없이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한 달에 100만원 넘게 손에 쥐었다.

◆ 아들 급식비 낼 돈도 없어

그에게 올해 여름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뇌수술을 받고 병원에 한 달 넘게 누워 있었기 때문. 증상이 나타난 것은 올해 6월 초. 일을 하다가 종종 어지럼증을 느꼈지만 괜한 의심 때문에 병원에 갈 만큼 삶은 여유롭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씨는 하고 싶은 말이 입밖에 나오지 않고 발음이 새는 듯한 느낌을 받고 한의원에 찾아갔다. 한의사는 "한의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닌 것 같다"며 그를 대학병원으로 보냈다. 비파열성 대뇌동맥류 진단을 받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 질환은 뇌혈관 일부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오른 것으로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뇌출혈로 사망할 위험이 높다.

6월 27일 이 씨의 수술날 아들 정훈이가 교복을 입고 병원에 왔다. "아빠 파이팅!" 정훈이는 수술대에 누워있는 아빠 손을 잡고 큰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수술실을 나섰을 때 그를 맞이한 것도 아들이었다. 정훈이는 담임 선생님의 배려로 일주일간 학교를 쉬기로 했다. 간병인을 쓸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안 정훈이가 수업을 포기하고 아빠를 간호한 것이다.

이 씨는 정훈이 생각만 하면 목이 멘다. 중학교 3학년 때 전교 10등 안에 들 만큼 공부를 잘했던 녀석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학원은커녕 문제지 사줄 돈도 없는 아빠를 잘 알기 때문에 정훈이는 절대로 '돈 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 정훈이는 "아빠 석식비 냈어요? 나중에 내도 되니까 걱정 마요"라며 오히려 이 씨를 안심시킨다.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지만 여태 생계급여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수술 전만 해도 이 씨의 근로 능력이 인정됐고 배기량 2천500cc인 낡은 트럭이 추정 소득 16만원으로 잡혀 있어서다. 이 때문에 세 식구는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간 수입이 전혀 없는 생활을 했다. 이달 말부터 생계급여를 받으면 최소한의 생활은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두 자녀의 미래다. 가난하고 병든 아빠가 중고등학생인 두 자녀를 키우기엔 생계급여 70만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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