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인사] "노숙자 신세 될 뻔하다 '하유미 팩' 만들었죠"…유현오 제닉 대표

갓 불혹(不惑)을 넘긴 유현오(41) 제닉 대표는 일반인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지난달 코스닥에 상장된 제닉(Genic)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그가 만든 제품은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월 평균 1천300만 개가 팔려나간다. 매출액은 올해 1천2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여성들 사이에선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대박을 터트린 일명 '하유미 팩'이다.

"그러고 보니 회사를 만든 지 꼭 10년이 되었네요. CEO로서 회사 자랑은 금기라고들 하지만 저희 회사뿐 아니라 국내 화장품산업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국격이 높아지면 덩달아 제품 이미지가 좋아지거든요."

세계 마스크팩 1위 업체인 제넥의 주력 제품은 수용성 하이드로겔(hydrogel) 마스크팩. 약물이 부직포에서 흘러나오는 기존 제품과 달리 체온에 의해 녹아 스며드는 방식이다. 한양대에서 화학공학 박사를 받은 유 대표의 전공 분야이기도 하다. 그는 2005년 국내 특허를 받은 데 이어 일본'중국'러시아에도 특허를 등록했다.

"대학 시절 호주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돈이 떨어져 '노가다'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40℃가 넘는 뙤약볕에서 일하다 보니 밤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요. 그런데 현지인들은 적신 수건을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얼굴을 덮더군요. 바로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수상 실적도 화려하다. 2002년 제30회 세계신기술전시회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5년 과학기술부 장영실 상'산업자원부 세계일류상품, 2006년 한국고분자학회 벤처기술상'특허청 100대 우수 특허, 2007년 벤처기업 대상, 2009년 신기술 실용화 국무총리상 등 상이란 상은 휩쓸었다.

"화장품은 제품이 아무리 뛰어나도 입소문이 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어렵더군요. 초창기에는 친척들도 저희 제품을 쓰지 않으려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름도 모르는 중소기업 제품이란 선입견 때문이죠. 이제는 신뢰가 쌓여 반품률이 6%를 넘지 않습니다."

코스닥 상장 역시 소비자들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그는 중소기업이란 단어가 주는 어두운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도 애를 쓰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직원들의 문화 교육과 봉사활동이다. "1년 전부터 전 직원이 매주 수요일에 모여 한 가지씩 악기를 배웁니다. 동아리 이름도 '제닉의 자격'으로 붙였어요. 직원들이 행복해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는 문화벤처기업입니다."

이 회사의 또 다른 특징은 엄격한 금연'금주령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퇴근 후에도 술을 마시지 못하고 담배는 일절 금지다. "업무시간에 열심히 일하면 퇴근이 늦을 필요가 없지요. 영업사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술로 하는 영업은 오래갈 수 없고, 그 직원이 떠나면 그만이에요."

지금은 국내시장 점유율이 30%를 웃도는 '절대 강자'이지만 위기도 있었다. 책상 앞에 크게 써붙여 놓은 '2006년, 2007년을 잊지 말자'는 다짐도 그 때문이다. "서울역 노숙자 신세가 될 뻔했죠. 종합 화장품회사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서둔 탓이었습니다. 2004년에는 피부에 바르면 따뜻해지거나 시원해지는 '핫 겔' '쿨 겔' 제품을 TV홈쇼핑에서 판매했다가 하나도 팔지 못해 방송이 중간에 중단되는 창피도 당했지요. 경영자에게 제일 무서운 게 교만이란 걸 일찍 깨달은 셈입니다."

기업인으로서 롤 모델(role model)을 물어보자 그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위인이 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구누구처럼 되겠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대신 닮지 않고 싶은 사람은 몇 명 정해뒀어요. 저렇게 살지 말자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거죠. 존경받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기업가가 되고 싶습니다."

김천에서 태어나 대구 경운초교'경운중'계성고'영남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고향 후배들에게도 솔직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제가 삼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한마디로 포기한 인생이었죠.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는 명문대 출신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하루 4시간씩 자며 공부했습니다. 저는 회사 직원을 뽑을 때 학력을 보지 않습니다.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혹 학벌 콤플렉스를 느끼는 후배가 있다면 저 같은 사람을 보고 희망을 갖길 바랍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