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성옛터' 작사 왕평 생가 보전 못할망정…

영천 성내동 터에 모텔 건립…시민단체 "市 인식부족" 성토

왕평 이응호.
왕평 이응호.
영천시 성내동 왕평길 입구 왕평 생가에 모텔이 건립되고 있다. 민병곤기자
영천시 성내동 왕평길 입구 왕평 생가에 모텔이 건립되고 있다. 민병곤기자

'황성옛터' 등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대중문화운동가 왕평(본명 이응호:1908∼1940) 선생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과 인식 부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심지어 왕평 선생의 생가에 최근 무인모텔이 건립되고 있어 시민사회단체 등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영천 시민단체 '희망영천시민포럼'은 17일 영천제일교회 교육관에서 시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왕평 이응호 선생 학술강연회'를 갖고 영천시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날 시민단체와 참석자들은 영천시가 지역의 큰 인물인 왕평 선생에 대한 조명과 자료수집을 소홀히 하는 등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 부족과 허술한 문화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정동일 희망영천시민포럼 공동대표는 "시가 지난 15년간 왕평가요제를 개최하면서 왕평 선생에 대한 자료 하나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 영천시 문화정책의 현주소"라며 "영천시의 무관심으로 지난날 영천 화북 자천의 상엿집과 영천 출신 실학자 이형상이 제주목사 시절 남긴 화첩 '탐라순력도' 등이 경산과 제주로 각각 팔려나갔다"고 비판했다.

이동순 영남대 교수는 "왕평은 수많은 작품을 통해 식민지시대 민족의 아픔을 노래하고 민중의 의식개혁을 이끌어 낸 대중문화운동가"라며 "1930년대 대중가요 작사, 연극대본 집필, 만담 창작과 출연, 영화 시나리오 집필 및 출연 등 눈부신 활동으로 작품 198편을 남긴 탁월한 대중예술가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업적을 남긴 왕평 선생의 생가에 최근 모텔이 들어서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영천시 성내동 왕평길 입구 왕평 생가는 이전에 한식점 '석류원'으로 사용되다 현재 모텔이 건립 중이다.

왕평의 막내 동생 이응린(83) 씨는 "큰형님은 9세 때 영천보통학교에 입학했으며 16세 때 영천에서 서울로 올라가 배제중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영천시 성내동에 살았으며, 나도 다섯 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며 "그 자리에 모텔을 건립한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기택 영천시의회 의장은 "한국대중문화사에 큰 업적을 남긴 왕평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영천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생가터 모텔 건립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시의회 차원에서 합리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허의행 영천시 자치행정국장은 "작년 7월 생가가 매각돼 철거된 상태에서 올해 2월 신축허가가 날 때까지 시, 문화원, 시민단체, 문중 등 모두가 제동을 걸지 않고 잊고 있었다"고 했다.

'황성옛터'의 노랫말을 지은 왕평 선생은 '여정다한'이라는 가요에서 '뜰아래에 오동나무 얼마나 잘앗는가'라는 노랫말로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는데, 성내동 생가터에 있었던 오동나무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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