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자리돔

제주 서귀포시 보목리 포구에서는 매년 6월이면 축제가 벌어진다. 자리돔 축제다. 축제 슬로건도 재미있다. '돔돔자리돔'이다. 씨알은 잘지만 도미의 일종이라 돔을 부각시킨 것이다. 남해안에서도 자리돔이 잡히지만 '자리돔=제주 특산품'의 지위를 위협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그런데 제주 자리돔의 명성이 언제 뒤바뀔지 모를 지경에 처했다. 한반도 주변 해역의 수온이 계속 상승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아열대 난류성 어종인 자리돔이 심지어 울릉도 주변 해역에서도 곧잘 잡히고 있다.

자리돔은 제주에서는 자리, 자돔으로 불리고 경남 통영에서는 '생이리'라고 한다. 4월 초부터 9월 초까지 남해안 일대에서도 낚시로 널리 잡히지만 영남 지역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미끼 도둑의 오명만 쓴 채 감성돔이나 벵에돔에 밀려 잡어쯤으로 여겨진다. 손맛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먹는 맛만큼은 자리돔을 능가할 생선이 많지 않다. 제주도 여름철 별미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자리돔이다. 제주 된장을 푼 자리돔 물회는 일품이고 큼직하게 회를 떠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자리강회, 소금 간을 해 통째로 구워내는 구이나 무침, 매운탕, 젓갈까지 다양하다. 5, 6월이 제철이라 이 무렵 제주도나 남해안을 여행하다 자리돔 생각을 하면 회가 절로 동한다.

이런 자리돔이 울릉도는 물론 독도 주변 해역에서도 대거 서식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국립수산과학원 독도수산연구센터가 최근 독도 주변 해역의 해양생태계를 조사했더니 "물속 어종의 대부분이 자리돔"이라는 보고가 처음 나왔다. 여름철 산란 시기 자리돔이 부화하는 데 적정한 수온은 20℃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독도에도 자리돔'파랑돔 등 난류성 어종이 산란할 수 있는 서식 환경이 갖춰지고 있다는 의미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우리 바다에 서식하는 어류만도 1천 종에 가깝고 1만여 종이 넘는 해양 생물이 큰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양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는 우리의 풍속마저 바꿔 놓을 태세다. 이러다 언제 울릉도 오징어 축제가 사라지고 자리돔 축제가 대신할지 모를 일이다. '자리돔이 풍년이면 울릉도 처녀 시집간다'로 노랫말이 바뀌고, 울릉도 자리돔을 공수해야 제주 사람들이 겨우 자리돔 물회 맛을 보게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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