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연극은 '배우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배우의 중요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래서 배우는 '연극의 중심'이며 '연극의 왕'이라는 얘기도 있다. 심지어 '희곡은 배우의 연기를 위한 소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배우가 단순히 극작가나 연출가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창조하는 창조자의 역할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관객이 작품과 직접 만나는 것도 작품을 평가하는 것도 모두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니 틀린 말이 아니다. 관객 또한 연극을 보는 가장 큰 재미로 꼽는 것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배우의 연기가 아닌가? 그야말로 배우는 '연극의 꽃'이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 혹은 나이가 들어서도 많은 사람들은 한 번쯤 배우라는 직업을 꿈꾸곤 한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주인공을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관객이 보는 무대 위의 배우는 실제 배우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관객은 단지 빙산의 일각만 보고 있을 뿐이다. 배우가 되기까지의 기초훈련과정과 무대에 오르기 전의 연습과정은 꽤 긴 시간이 필요하며 이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럼에 불구하고 다른 직업에 비한다면 경제적으로 열악해서 극히 일부 배우를 제외하고는 출연료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한마디로 연극에 대한 열정, 배우에 대한 꿈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사명감이 없다면 배우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질이 없다면 계속해서 배우를 할 수도 없다.
배우에게는 노력이나 훈련만 가지고는 만들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이나 조건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이는 배우의 신체훈련 과정 혹은 연극연습 과정에서 분명히 나타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신체, 즉 인간의 몸은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이자 도구이다. 그래서 신체적 장애가 있다고 해도 극작가나 연출가가 되기에는 별 무리가 없지만 배우에게는 그것이 큰 장벽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배우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배우의 목소리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여기서 목소리란 음색이 아니라 배우의 말 혹은 언어표현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말한다. 연극은 몸으로만 표현하는 무용과 달리 가수처럼 목소리에 많은 것을 담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의 훈련과정에는 발성, 호흡, 발음, 사이(pause), 표준어 등 목소리 혹은 말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이것들은 타고난 부분이 많지만 치명적인 장애가 아니라면 고통스러운 훈련과정을 통해 그리고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외면의 목소리'이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목소리도 있다. 그것이 바로 배우의 두 번째 목소리인 '내면의 목소리'이다.
인간의 타고난 감수성 혹은 여러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세계관 등이 담긴 내면의 목소리야말로 배우에게는 더 중요한 목소리이며 깊이 있는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의 조건이라고 할 것이다. 이 두 번째 목소리가 말의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죽은 대사를 생동감 넘치는 삶의 목소리로 바꾸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명연기 혹은 명배우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 목소리 모두를 갖춘 배우들이 만나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관객은 세 번째 목소리를 듣게 된다. 마침내 목소리가 단순한 사람의 소리에서 삶의 소리로 바뀌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장면은 우리가 흔히 '액션'과 '리액션'이라고 부르는 것들에서 쉽게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10의 능력을 지닌 배우 2명이 함께 연기할 때 관객은 2명의 능력을 더하기 한 20을 볼 수 있어야 하지만 '액션'과 '리액션'이 조화롭지 않은 경우에는 10밖에 보지 못할 수도 있고 0을 보게 되는 최악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목소리 모두를 온전히 지닌 2명의 배우가 제대로 호흡을 맞추는 경우에는 10에 10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능력을 곱하기 한 100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렇게 함께 호흡하며 조화를 이룰 때 나오는 목소리가 바로 배우의 세 번째 목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이란 배우가 자신의 신체를 통해 자신의 세 가지 목소리를 관객에게 모두 보여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배우가 연극의 꽃이자 중심이며 배우예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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