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백년보다 긴 하루'는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작가 친기즈 아이뜨마또프가 쓴 스텝 사람들 이야기다. 이야기의 중심은 사막과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대륙 횡단 철도가 지나가는 사리오제끼다. 기차는 동쪽에서 달려와 서쪽으로, 혹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려간다. 철도가 지나는 사막 가운데 간이역 부란니-보란니가 있다.
노인 예지게이는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고 말리라 다짐하며 살아가는 철도 노무자다. 그는 2차대전의 후유증으로 몸이 쇠약해지는 바람에 이곳 간이역으로 흘러들었다. 자신의 선택이기도 했고, 새 질서에 밀려난 '유배'이기도 했다. 예지게이는 이곳 생활이 평생 계속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막이 아니라 언젠가는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땅, 바다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여태 떠나지 못했다.
예지게이는 어째서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철도 노무자 일에 대한 보람이나 자부심? 그런 게 있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 척박한 땅에서 한번 살아보겠다는 사나이의 오기나 고집? 글쎄 그것도 아니다. 그는 이곳에 유배라도 된 사람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예지게이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사막이다. 사람살이의 '가뭄'과 '폭설' '두려움과 절망' '혹한'과 '기대하지 않았던 장대비' '가슴을 아리게 하는 전설'은 어디에나 편재한다. 누구에게나 정착지는 낙원인 동시에 유배지다. 이곳에 사는 여우 역시 여기가 살기 나쁜 곳임을 알지만 떠나지 못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쇳덩이(기차)는 굉음을 쏟아내며 달려오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여우는 멀어지는 기차를 보며 철로로 다가선다. 여우에게 기차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쇳덩이인 동시에, 음식물 찌꺼기를 창밖으로 내던지는 삶의 근거다. 주인공 예지게이에게 사막 역시 그러하다.
사막은 생명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가뭄이 심한 계절엔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렵다. 겨울엔 온통 눈으로 덮여 원근을 구분할 수 없다. 모두들 떠나지만 예지게이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고, 떠나지 못했다. 소설은 예지게이가 근무하는 간이역의 선배이자 동료인 까진갑의 죽음으로 시작되고, 그의 장례식 종료와 함께 마무리된다. 그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과 예지게이의 회상이 소설의 내용이다. 친구의 시신을 트레일러에 싣고 사막을 가로질러 종족의 묘지로 가는 예지게이, 그 길 위에서 회상으로 만나는 사람들, 전설처럼 전해오는 카자흐 민족의 이야기와 개인적 사연은 서럽고 아프다.
전설과 역사, 현실과 공상이 융단처럼 펼쳐지는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이 소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귀감으로 꼽힌다. 이 한 권으로 독자는 스텝지방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고, 사람살이를 읽을 수 있다. 흔히 이 책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간의 고독'을 혼동하는데, 다른 책이다. 413쪽.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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