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동 스캔들?'
영화 '인사동 스캔들'은 고미술과 골동품, 국보급 보물 등 문화재를 둘러싼 추악한 뒷거래 및 위조, 그리고 이를 파헤치는 문화재청 소속 천재급(?) 공무원 간의 쫓고 쫓기는 스릴러 영화다. 이쪽 세계는 복잡한 동네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시대, 그 그림이나 물건(보물)을 만들어 낸 주인이 죽고 없으니, 현시대에서 그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고 값을 매기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그림이나 작품을 두고, 진품이냐 위작이냐 등의 논란은 비일비재하다. 후세에서 돈으로 그 가치를 평가하다 보니 어쩌면 금전에 눈이 먼 당연한 줄다리기인 줄 모른다. 그래서 나온 정당한 가치평가 방법이 경매 방식일지 모른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매의 양대 산맥이다. 이곳에서는 평가사의 객관적인 감정이 있은 후, 가격은 시장경제원리와 같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이뤄진다.
아직은 마니아층에 국한되지만,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경기가 호황일수록 이 고미술 및 골동품 세계는 일반 중산층 가정까지 파고든다. 그만큼 수요층이 넓어지는 것이다. 국내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TV 진품명품'이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관심 속에 방영되는 것만 보아도 그 저변이 확대될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대구경북 역시 이런 고미술 및 골동품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3, 4곳에서 일주일에 몇 번씩 경매장이 선다. 하지만 아직은 거래가 활발하지 못하다. 그나마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에 2번에 걸쳐 활발하게 경매가 펼쳐지는 대구시 남구 이천동 고미술거리에 있는 'J 옥션'을 찾아 그 세계를 살짝 엿봤다. 문외한(門外漢) 입장에서는 역시나 입이 떡 벌어졌다.
◆'여기는 경매 현장입니다'
22일 오후 2시 이천동 고미술 거리에 있는 경매전시장 'J 옥션'. 조재영 대표가 무선 마이크를 입 주변에 달고, 경매할 물건들을 바지런하게 정리해 놓았다. 그 옆에는 소중한 물건들을 갖다놓고, 또 가져가는 역할을 하는 직원이 있었으며, 바로 옆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여성 직원이 거래가 이뤄지는 것을 정확하게 기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매장 입구에는 바나나와 포도, 빵 등 간단한 다과도 준비돼 있었다.
50, 60명이 경매에 참석했고, 이내 첫 경매 작품이 소개됐다. 번호구분 , 고려시대 분청사기였다. '무늬 완전하고, 알팀(흠집) 없고, 수리 없습니다'. 100만원부터 호가가 시작됐다. 이내 150만원→200만원→300만원→370만원까지 올라갔지만 더 이상의 가격은 없었다. 팔려는 사람이 만족해하는 가격인 콜(call) 금액에 근접하지 못해 결국 유찰됐다. 이어 조선시대 백자가 등장했다. 이 역시 알팀 없고, 수리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역시나 100만원에서 출발해 157만원까지 갔으나 콜 금액 200만원에는 이르지 못해 또 유찰됐다.
박쥐 두 마리가 그려진 청자였다. 콜 금액 900만원에 못미치는 700만원까지 호가가 올라갔다. 결국 또 유찰이었다. 경매가 쉽지 않았다. 그러자 이내 가격이 낮은 골동품 및 옛 생활제품을 내어놓자 이내 10만원, 30만원 등에 낙찰됐다.
일본 이마리야끼 도자기도 소개되자마자 30만원을 부른 77번 손님에게 돌아갔다. 조선시대 상여 목각도 눈길을 끌었다. 저승사자가 호랑이를 타고 있는 장면의 목각이었다. 하지만 아깝게 가격이 맞지 않아 유찰됐다. 수십만원대 작품들은 쉽게 경매가 이뤄졌다. 토기 등도 흠집이 많은 탓인지 높지 않은 가격에 매매가 이뤄졌다.
경매 중간중간에 오가는 농담들은 경매장을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부부 조각상인데 남편 머리가 왜 그래요? 아내한테 맞았구나!''1장만 더 쓰지 뭐! 아따! 마음 비우소!''한 타이밍 놓치면 또 들고 와야 한다카이''30만원은 감이 안 좋다. 29만원!'등.
◆눈길 확, '진귀한 물건 등장이오!'
역시나 한끗발이었다. 초원에는 사자, 깊은 산중에는 호랑이가 대장이듯이 경매장에서도 수천만원, 수억원대의 진귀 작품들이 선보일 때는 모두가 숨을 죽인다. 그리고 호가를 할 때도 조심스럽다. 일단 단위 자체가 최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오가기 때문이다.
이날 역시 수십 점의 작품이 유찰 및 낙찰을 반복할 무렵 진귀한 물건이 등장했다. 입장부터 남달랐다. 리본으로 묶여 있는 나무상자에 곱게 포장돼 있었다. 상자를 여니 푸른 표지의 감정서가 등장했다. 그리고 내부 손상 방지 종이들을 걷어내니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시대 후기 작품인 '백자청화봉황운문호'(白瓷靑畵鳳凰雲紋壺)였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쌍봉(봉황 2마리)이 항아리를 타고 날고 있었으며, 알팀이 없고 수리하지 않은 완벽한 작품이었다. 한국고미술협회 인증서가 그 가치를 감정해주고 있었다.
경매는 1천700만원에서 출발했다. 이내 2천만원→2천700만원→3천만원→3천200만원→3천500만원에서 3천700만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 작품의 콜 금액은 4천500만원이었기 때문에 다음 경매 때 다시 한번 올리기로 했다. 그때까지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은 또 심사숙고해야 한다. 대개 이런 진귀한 물건이나 작품들은 매매 자체가 단번에 이뤄지지 않고 여러 차례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남 마산에서 온 최을수(65) 씨는 "20년 넘게 경매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렇게 거래를 하면 암거래나 뒷거래를 통한 폐해를 막을 수 있어서 좋고, 때로는 더 싸게 필요한 작품들을 구입할 수 있어서 좋다"고 털어놨다. 남구 이천동 고미술 거리에서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고미술(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용수(69) 씨도 "오늘 경매에서 토기와 접시 등을 수십만원 정도에 구입했는데, 실제 고미술과 골동품 경매가 재테크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수억원대에 이르는 국보급 보물들도 이런 경매를 통해 등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객은 'J옥션'을 찾아 3억∼5억원 정도에 이르는 금동불상을 인사동에 맡겨놓았는데 여기서 팔아줄 수 있느냐고 의뢰하기도 했다.
한편 이런 고미술 및 골동품 경매는 파는 사람에게만 수수료 10%를 받고 있으며, 경매를 통해 낙찰이 됐음에도 이를 취소하면 또 10%의 패널티(벌금)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경매가 성사되고 나면 작은 금액은 즉석에서 현금거래를 통해 주고받으며, 액수가 크면 나중에 계좌이체 등의 방법으로 돈이 전달된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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