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민기자] 85세에 손주들 버린 크레파스로 화가 도전

87세 화원읍 박만선 할아버지

'대구 팔공산에 /月이 明같서 /달성공원에 /두견새 울어/낙동강 변에서/ 애인을 만나 /달 밝은 곳을 찾아가니/날이 새고 임 떠나가네.' -月光愛人-

'산중에 과실 /노중에 폐물 /일전도 재산 /망개도 과실 /궁탁도 요기'

박만선(87'달성군 화원읍) 할아버지가 쓴 자작시다. 박 할아버지는 "산에 있는 것들은 모두 과실, 길가에 폐물, 돈 한 푼도 재산, 침 한 방울도 배고플 때는 요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박 할아버지는 도쿄대 2년을 다니다 중퇴하고 경찰관으로 35년을 근무하다 퇴직한 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박 할아버지 집 현관을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키다리 선풍기 두 대, 박스, 액자, 병따개가 든 비닐봉지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벽에는 사방으로 그림, 글씨, 표창장, 훈장 등으로 빼곡하게 도배되어 있다. 씨름, 강강술래, 물레방아와 절 풍경, 빨래터 등 다양한 소재의 그림들이 걸려 있어 정겨움이 묻어난다. 박 할아버지는 2년 전부터 손자들이 쓰다버린 크레파스를 모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씨름하는 그림은 텔레비전에서 본 걸 떠올리며 그렸어요. 하천을 마주 하고 있는 물레방아 방앗간과 절의 그림은 젊은 시절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유가면 음리에 있던 물레방아 방앗간과 유가사를 회상해 그린 겁니다."

그림 액자는 버려진 시계 틀을 주로 활용했다.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에게도 값진 그림을 선물했어요. 꽃이 핀 난 그림을 그려 액자에 넣어 전하니 아내가 너무 좋아했어요."

부인 송윤상(79) 할머니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주워 와서 앉을 곳이 없다. 몰래 버리면 다시 주워오기를 반복해서 이젠 지쳐 그러려니 하고 둔다. 명절을 앞두고 자식들이 오는데 앉을 자리는 있어야 할 것 같아 물건을 많이 정리한 편"이라고 했다.

지난봄부터 거동이 불편한 박 할아버지는 나무를 잇대 손수 만든 침대에서 생활하고 있다. 침대 밑에서 케이크 종이판을 보여주는데 크레파스로 테두리가 그려져 있다. 그림을 그릴 거란다. 고령의 연세에도 그림, 글씨, 자작시를 쓰며 자기만의 세계를 열어가는 박 할아버지의 건강을 빌어본다.

글'사진 우순자 시민기자 woo7959@hanmail.net

멘토: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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