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언어 사용법

말을 하고 표정을 짓는 것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모든 동물들이 고유의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인간은 300만 년 동안의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언어'라는 다른 동물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우아한 의사 전달 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발전시켜 온 고상한 의사 전달 방법이 점점 퇴화하고 있어 걱정이다. 은유와 비유를 통해 에둘러 얘기하던 조상들의 멋지고 세련된 표현 방식은 사라지고 이제 말은 칼이 되어 상대를 베어 버리는 폭력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지금도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악플'이란 이름의 칼이 되어 버린 언어에 의해 상처받고 있을 것이다.

처칠의 일화! 의회의 휴식 시간에 화장실엘 갔더니 사람들이 많이 몰려 변기 하나만 자리가 비어 있었다. 대기업의 국유화를 주장하면서 처칠과 의회에서 한창 거친 논쟁을 벌이고 있던 노동당 당수 애틀리의 옆자리였다. 처칠이 그곳으로 가지 않고 다른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자 애틀리가 "내가 불쾌하오? 왜 여기 빈자리가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처칠은 "겁이 나서 그럽니다. 당신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하는데 혹시 내 것을 보고 국유화하자고 달려들면 큰일 아닙니까?"라고 진지하게 대답하여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또 영국 최초로 여성 의원이 된 에스터는 여성에게 참정권 허용을 반대하는 처칠과 앙숙이었다. 사사건건 부딪치다 화가 난 에스터가 어느 날 "내가 당신의 아내라면 망설이지 않고 당신이 마실 커피에 독을 타겠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처칠은 싱긋 웃으며 "내가 당신의 남편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그 커피를 마시겠소"라고 대꾸해서 그녀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TV에 비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모습! 서로를 향해 내뱉는 막말에 가까운 거친 언어와 험악한 표정들은 아이들이 볼까 부끄럽고, 정당의 논평들이 어쩜 한결같이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원색적인 용어들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또 국정감사나 청문회라도 열리면 화난 표정과 흥분된 음성으로 상대는 말도 못 하게 다그치면서 자기 말만 열심히 쏟아내는 우스꽝스런 모습들을 자주 보여준다. 그렇게라도 눈에 띄고픈, 표를 향한 갈망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 모습들이 우리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유발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한마디 말로 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재치도, 옛글을 인용하여 넌지시 잘못을 탓할 수 있는 세련됨도 없이 막무가내로 호통만 치는 그런 모습들이 우리 사회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그분들은 알고 있을까?

정치뿐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이렇게 거친 언어들이 거리낌 없이 사용되는 까닭은 아마도 다들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인 듯하다. 세계 1위의 IT강국인 우리나라는 인터넷의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급해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사건이 생기면 곰곰이 전후사정을 따져보기보다는 군중심리에 의한 여론몰이로 당사자를 짓밟아 버리거나, 누군가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헤아려 보지도 않은 채 적대적인 태도부터 취하곤 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점점 소통이 힘들어졌고, 급기야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방법의 사용도 서슴지 않는 과격한 집단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사회가 문화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해선 의사소통의 방법부터 세련되어져야 한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닌 사용하는 이의 교양과 인품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말에도 여유가 생긴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만 양보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열린 마음, 남에게 상처가 될 말은 삼가는 배려하는 마음들을 가지자. 그리하면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 갈 이 나라를 조금 더 따뜻하고 여유로운 곳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거친 언어들이 난무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노라니 처칠의 유머 감각이 그리워져서 해보는 말이다.

강민구(KGM내과 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