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마음의 책] 병석에 늘 누워 계셨지만 아버지는 내삶의 버팀목

아버지의 뒷모습(背影)/ 주자청(朱自淸) 지음/ 양태은 옮김/ 베틀북 펴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최고의 산문 작가로 손꼽히는 주자청(朱自淸)의 대표작 '아버지의 뒷모습(背影 배영)'.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이니까 많은 독자들이 기억할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뚜렷해져만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아들의 애잔함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글은 내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가을, 아버지는 울릉도에서 연탄가스 사고를 당하셨다. 비오는 날 관사에서 혼자 주무시다 변을 당한 것이다. 아버지는 여러 차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10여 년을 투병하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1987년 봄에 돌아가셨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은 조각조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연속극처럼 이어지는 그림이 없다. 열한 살 가을까지만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완전하지 못하다.

아버지 자리가 자식에게 주는 일반적인 느낌이 내게는 없었다. 온 종일 누워 계시던, 병색이 완연한 아버지, 가족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굳어버린 아버지. 어머니는 아버지 곁을 잠시도 비우지 않으셨다.

주자청의 이 글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읽어볼 일이 생겼다. 정말 몇 년에 한 번씩. 정기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그랬다. 그때마다 일찍 떠나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되살려 보았다. 아팠다. 아쉽고 서러울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빈자리는 더 커지는 것 같다. 생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다. 병석에만 계셨던 아버지였으니. 나에게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니라 아버지가 누워 계시던 빈자리가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내가 이글을 처음 접한 지는 아마 삼십 년쯤 된 것 같다. 이제 내 아들이 이 글을 처음 접하던 때의 내 나이가 되었다. 그래선지 이번에는 이 글을 읽는 느낌이 달랐다.

1997년 말 온 국민이 IMF 사태의 무게감에 짓눌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던 시절, 김정현의 '아버지'라는 소설을 만난 적이 있다.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삶을 정리하는 아버지 이야기다. 가족이야기다. 오랜만에 책을 보면서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주자청의 이 글을 꺼내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주자청의 글을 읽으며 김정현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시대와 공간적 배경은 1920년대 중반의 중국과 1990년대 말의 대한민국으로 다른데도 말이다.

주자청의 작품에서 아버지는 베이징으로 공부하러 떠나는 아들을 위해 열차 선로를 가로질러, 플랫폼을 기어오르다시피하여 길 저편으로 가서 귤을 한아름 사서 온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기어이 귤을 쥐여 준 뒤 도착하면 편지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간다. 힘들어 보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들은 눈시울을 적신다.

작가 주자청에게 나를 대입시켜 본다. 비록 병석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존재 그 자체가 삶의 버팀목이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에 가슴을 친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버지 산소에 다녀와야겠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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