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인사] 법무법인 '한신' 이끄는 권재갑 변호사

"방위산업 분야에선 전국최고 자부 미국계 회사 들어와도 승산 충분"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방황하던 그를 돌려세운 건 모정(母情)이었다. 1978년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왔다가 받아든 어머니의 편지 한 통! 삐뚤삐뚤한 글씨였지만 '언제나 너를 믿는다'는 짧은 글 앞에 기어이 오열하고 말았다.

그를 지켜준 건 아버지였다. 늦깎이로 들어간 대학에서도 '딴 생각'을 하다 뒤늦게 도전했던 사법시험에 합격한 날, 아버지는 말없이 맥주 한 잔을 따라주었다.

하지만 그가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한 번도 남의 부탁을 전하지 않은 강직함이었다. 국내 유일의 방위산업 전문 로펌으로 꼽히는 법무법인 '한신'을 이끄는 권재갑(52) 변호사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습니다. 하지만 고교 입학 무렵 선친의 사업이 갑자기 기울면서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를 보냈지요. 서른이란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것도 솔직히 부모님 속 썩인 데 대한 반성이 한몫 했습니다."

전액 장학생으로 건국대 법대를 졸업한 권 변호사는 1990년 사시 32회에 합격, 창원지검과 대구지검 상주지청에서 1995년 말까지 근무했다. 당시 꼬장꼬장한 젊은 검사로서 '악명'도 떨쳤다. 김영삼 정부 시절, 비리에 연루된 현직 경찰관 수사가 청와대의 압력을 받자 사문화(死文化)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기소 전 증인 신문'을 적용해 끝내 구속시킨 일도 있다.

이후 법복을 벗고 상주와 대구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그는 2006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해 1월 문을 연 방위사업청의 초대 규제개혁 법무담당관(부이사관급) 공모에 합격한 것. "변호사 생활을 10년쯤 하니까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군요. 무언가 보람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각종 군납 비리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방위사업청이 설립되자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물론 월급이 크게 줄어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요."

중국 고전 '초한지'에 나오는 명장, 한신(韓信)을 떠올리게 하는 '한신'(韓新)은 방위산업 분야의 최고 전문 변호사들로 구성돼 있다. 2009년 6월 퇴직할 때까지 방위력 개선사업'군수품 조달 관련 법령 정비, 계획 수립은 물론 행정심판'소송 사무까지 총괄했던 권 대표를 비롯해 군과 국방부 출신 변호사 6명이 함께하고 있다. 전체 변호사는 16명이지만 매출의 절반 이상은 이들 방위사업팀이 담당한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무기수출 자문 역할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법률시장 개방에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미 FTA 체결 이후 미국계 대형 로펌들의 진출이 더 활발해지겠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해외 로펌은 국내 방위산업 시장에 대해 정통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물론 정부도 외국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저희 같은 전문 로펌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국'러시아'이스라엘 등 외국 변호사 영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군수체계에 대해 국내 최고의 전문 변호사로 꼽히지만 그는 '6개월 방위' 출신이다. 혹 일부 정치인들처럼 편법을 쓴 게 아니냐는 농담을 건네자 손사래를 쳤다. "부끄러워서 자주 말하지는 않지만 3대 독자인 덕분에 군 생활이 짧았습니다. 연애결혼한 아내에겐 큰 부담이 되었겠지만요. 허허허."

대구 남도초교, 경구중, 달성고를 나온 권 변호사는 건국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광운대 대학원 방위사업학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도 하고 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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