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한 마리가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아내가 부엌에서 고등어를 굽고 있는 모양이다. 고등어는 바야흐로 프라이팬 위에 누워 기체로 몸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집안의 공기 흐름을 따라 고등어는 천천히 지느러미를 움직여 내 코의 후각에 와 닿는다. 따지고 보면 모든 생명체는 몸을 바꾸어 자신의 존재를 이어간다. 오늘 아침에 먹은 고등어가 나의 살이 되어 내가 되듯이 나 또한 흙에 파묻혀 참나무의 이파리가 되고 도토리가 될 것이다. 이 생멸의 원리를 일깨워주기 위해 나무는 해마다 이파리와 꽃잎을 무성하게 피웠다가 남김없이 떨어뜨리는 게 아닐까.
바다의 물고기나 땅의 꽃나무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공중을 나는 새들도 죽음의 섭리에서 한 치도 비켜갈 수 없다.
오래전의 일이다. 경부고속도로 영동 부근을 지날 때였다. 이른 봄바람을 즐기며 차창을 열고 느긋하게 운전하던 나는 도로 옆에 장끼 몇 마리가 떨어진 것을 보았다. '웬 떡이냐'가 아니고, '이게 웬 꿩이냐'였다. 꿩 대신 닭이란 속담도 순간적으로 뇌리에 스쳐갔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야산의 꿩이 먹이 구하러 마을로 내려가다 버스에 부딪힌 것이었다. 안된 마음도 잠시, 얼른 꿩을 주워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섬뜩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렇다. 그것은 고기가 아니고 사체였다. 차갑고 딱딱한.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구덩이를 파 팔자에도 없는 꿩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집 앞에서 초등학생 몇 명이 빙 둘러서 있기에 들여다보니 참새 한 마리가 횡단보도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새가 왜 땅에 떨어져 죽나. '하늘의 화육'(化育), '바람의 정령들'인 새가, 저 푸르고 높은 창공에 날아야 할 새가, 왜 이 비루한 땅에 떨어져 죽는가 말이다. 정현종 시인의 말마따나 참으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풀무치의 무덤이 풀숲에 마련되고 물고기의 무덤이 물속에 지어지듯 새의 무덤도 하늘에 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새를 손바닥으로 감싸 집으로 가져왔다. 얼른 땅에 묻어줘야 했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어서 우선 냉동고에 보관했다. 복사용지 깨끗한 종이에 싸 넣으면서 어째 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무심코 열어보다가 얼마나 소스라칠까. 음식 보관하는 곳에 사체를 넣다니. 아내가 알면 당장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먹다 둔 닭고기, 쇠고기 넣는 일이나 참새 넣어두는 일이 뭐가 다른가. 그렇게 생각 바꿔도 찜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닭이나 참새나 다 같은 새인데 어째서 꺼려질까. 더구나 정종 안주로는 참새구이가 제격 아닌가. 음식과 사체의 이 간극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여성 시인의 시구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우연히 죽은 새는 아무도 먹지 않네/ 살해당한 새만 먹을 수 있네" (허수경, '우연한 나의'). 햐, 그렇구나! 우리는 우연히 죽은 새를 먹지 않는다. 소도 돼지도 우연히 죽은 것은 먹지 않는다. 반드시 사람의 손으로 죽여야 먹을 수 있다. 음식과 사체의 차이를 시인은 이렇게 단 두 줄로 명쾌하게 요약해 주었다.
아, 참새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론 구워 먹을 수는 없는 일. 딸아이와 함께 아파트 화단 오동나무 아래 고이 묻어주었다. 다음해 봄이 되어 오동나무 우듬지를 보았더니 새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기름진 새를 먹은 오동이 가지마다 보랏빛 꽃숭어리를 매달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새가 나무로 몸을 바꾼 것이다.
말 그대로 조락의 계절이다. 고스러지는 풀잎, 시들어가는 꽃들은 지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 바꾸고 있는 중이다. 삶과 죽음 때문에 불편한 이들이여. 죽음은 탄생과 동시에 생겨나 함께 자라는 것. 태어나지 않았다면 죽음 또한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손바닥의 양면, 그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해마다 저 단풍나무는 곱게 저를 물들이고 마침내 힘겹게 잎을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장옥관 시인'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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