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원초교 동본리중 성광고 공교육 실험, 학교도 쑥쑥, 아이도 쑥쑥

사진설명=독특하고 과감한 발상으로 변화를 꾀하는 학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어 그 성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진로적성검사 결과에 따라 학생의 흥미 유형에 따라 학급을 편성, 운영하는 동본리중의 수업 모습.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사진설명=독특하고 과감한 발상으로 변화를 꾀하는 학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어 그 성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진로적성검사 결과에 따라 학생의 흥미 유형에 따라 학급을 편성, 운영하는 동본리중의 수업 모습.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19세기 교사들이 20세기 교실에서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한동안 회자됐다. 공교육의 보수적인 틀이 급변하는 학생들의 개성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지적인데, 이런 가운데 최근 다양한 공교육 실험을 시도하는 학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학교 다양화가 진행되면서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교과서를 들고 공부하는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숙제 없는 학교'를 내세운 상원초교, 직업적성검사 후 적성에 따라 학급을 편성하는 동본리중학교, 담임 선택제를 운영 중인 성광고.

공교육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학교 현장과 운영 노하우를 들여다봤다.

◆상원초교, '우리 학교는 숙제가 없어요.'

"마음에 드는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죠. 그래도 제가 하고 싶던 것이었으니 그 과정도 즐거웠습니다."

박창혁(6년) 군이 지난 여름방학 때 했던 과제는 '유명 축구 선수들은 어떻게 축구를 잘하게 되었을까'였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유명 축구선수 5명이 조사 대상. 스스로 정한 주제였던 만큼 성장 과정에서의 노력 등 성공담을 꼼꼼히 살펴 기록으로 남겼다.

2009년부터 상원초교는 교사가 학생에게 숙제를 내지 않는다. 대신 학생들이 매일 스스로 정한 과목, 주제를 공부한 뒤 '스스로 알아가는 즐거운 공부'라 이름붙인 학습장에 그 과정을 적으면 교사가 나중에 조언을 하고 있다.

상원초교가 이 같은 교육 방식을 도입한 것은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방학 때도 교사가 숙제를 내지 않는다. 이곳 학생들은 방학 전 과제 계획서를 스스로 만들어 교사의 점검을 받는다. 과제를 수행하고 방학이 끝나면 2절지 크기의 '나만의 맞춤형 방학과제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지난 여름방학을 보내며 학생들이 만든 보고서는 독서, 식물관찰, 가족여행, 대구 스탬프 트레일 등 다양했다.

평소 박수진(6년) 양이 학습장에 채우는 내용은 교과 내용 복습과 예습. 교사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고 기록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실 때 짜증이 나고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과제를 정하고 해결하는 게 재미있어요. 주제를 정하면서 혼자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생긴 것도 좋아요."

숙제가 없기 때문에 학력이 떨어지진 않았을까. 상원초교는 지난해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에서 대구 초교 가운데 최우수학교로 선발돼 그 같은 우려가 기우임을 보여줬다. 이곳 박찬명 교장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밴 덕분이라고 했다. "과제 설정부터 수행까지 아이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주면 생각이 깊어지고 공부하는 재미도 알게 됩니다. 이 방식이 아이들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성적 또한 나무랄 데 없으니 학부모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죠."

◆동본리중, '끼리끼리 한 반'

동본리중은 독특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진로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외부 인사를 초청해 진로 특강을 하거나 직업 체험에 나서는 것은 어느새 흔해진 풍경이 됐다. 동본리중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올해 3월부터 아예 진로적성검사 결과에 따라 학급을 편성하는 방식을 택해 시선을 끌고 있다.

동본리중에 따르면 현재 1~3학년 각 6학급은 모두 홀랜드진로적성검사 결과를 반영, 성적순이 아니라 같은 흥미유형을 지닌 학생들끼리 한 반으로 모았다. 검사 결과에 따라 학생들은 실재형(Realistic), 탐구형(Investigative), 예술형(Artistic), 사회형(Social), 진취형(Enterprising), 관습형(Conventiona) 등 6가지 흥미 유형으로 구분돼 있다.(표 참조)

같은 흥미 유형인 학생들만 모아둔 만큼 학급 분위기도 제각각이다. 이희정 교사(국어과)가 담임인 2학년 6반 학생들은 모두 예술형. 개성이 뚜렷한 만큼 자기주장도 다들 강하다. "다른 유형 아이들과 섞여 있었다면 '4차원' 소리를 들을 만한 아이들이에요. 제 조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 난감할 때도 많죠. 대신 착하고 낙천적인 데다 이기적이지도 않아 서로 잘 어울린답니다."

세심하고 계획적인 관습형 학생들이 모인 2학년 3반 담임은 김소라 교사(사회과). "아이들이 제 말을 아주 잘 따릅니다. 지각생이 없고 과제를 내면 빼먹는 아이들도 거의 없어요. 융통성이 부족한 게 조금 아쉬울 뿐이죠."

이처럼 학급을 나누는 아이디어는 평소 진로교육에 관심이 많던 김남옥 교장 등 교사들이 구상한 것이다. 국내에서 유례없는 시도여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학생, 학부모 설문을 통해 동의를 얻었을 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를 상대로 연수와 설명회도 여러 번 가졌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흥미 유형에 따라 학급을 구분한 만큼 진로교육 시간은 물론 평소 수업 때 학급별 교습법도 달리하고 있다. 가령 분석적이고 학구적인 탐구형 학생들이 모인 학급에서는 발표와 토론 수업, 감성적인 성향이 강한 예술형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시각자료 활용 수업을 강화하는 식이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과학 과목을 좋아하는 김나영(3년) 양은 현재 학급 분위기가 만족스럽다. 나영이가 속한 학급은 탐구형 학생들이 모인 곳. "지난해만 해도 저희 반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지금은 탐구심이 강한 아이들이 모여 있어 공부하기에 딱 좋아요. 수업 마칠 때쯤 선생님께 질문을 할라치면 눈치 주는 아이들도 없죠. 성격이 비슷해서인지 우리 반은 다들 그러는 걸요."

김 교장은 학교에 오는 것이 즐겁다는 학생들을 보면 이 방식을 도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교사가 아이들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죠. 더구나 진로교육을 중시하는 2009 개정 교육과정과도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성광고, '담임 선생님을 선택하세요'

지난해부터 성광고의 모든 학생들은 직접 담임교사를 고르고 있다. 이른바 '담임 선택제'다. 수도권 일부 고교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다 교사 간 위화감 조성, 학력 저하 우려 등으로 논란을 빚었으나 성광고는 대담하게 담임 선택제를 밀어붙인 것. 수업의 질과 학생, 학부모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성광고는 학교 홈페이지에 담임 후보자 명단을 띄운다. 명단을 클릭하면 담임직을 지원한 교사들이 직접 작성한 1년간 학급 경영 계획서가 나온다. 학생들은 명단을 살펴본 뒤 1~3지망까지 희망 담임교사를 선택할 수 있다.

성광고에 따르면 담임교사를 확정할 때 학생들의 선택, 자체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른 배정 방식을 혼용한다. 가령 한 학급 정원이 30명인데 A교사를 담임으로 1지망한 학생이 40명일 경우 30명까지 컴퓨터 추첨으로 배정하고 나머지 학생은 각각 2, 3지망한 교사에게로 보내는 식이다. 성광고 측은 1, 2지망 확정 비율이 95% 내외라고 전했다.

자칫 담임 선택제가 교사 인기투표에 그칠 우려가 있는 만큼 학생들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시도다. 실제 만나본 성광고 학생들은 이모저모 꼼꼼히 따져본 뒤 담임교사를 선택하고 있었다.

김다훈(3년) 군은 학급 운영 계획서에서 철저한 자습 관리를 공언한 교사를 담임으로 골랐다. 그 교사가 취약 과목인 영어 담당이라는 점도 중요한 선택 요소였다. 정병우 군은 고3인 만큼 진학지도 경험이 풍부한 교사를 택한 경우다. "저처럼 대부분 학생들이 진지하게 생각한 뒤 담임 선생님을 정해요. 특히 이 제도 시행 전보다 담임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자신을 따라오겠다고 결정한 학생들이니까 선생님도 자기 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으시는 것 같아요."

이 제도가 정착하기까지는 권순찬 교장의 의지도 한몫했다. 권 교장은 수요자 중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고 담임 선택제를 추진했다.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도록 보완책도 마련했다. 상벌점제를 운영해 학생의 벌점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담임 선택권을 제한, 면학 분위기를 흐릴 우려가 있는 학생들이 한 학급에 몰리는 것을 막고 있는 것.

"일부 부정적 반응을 보이던 교사들도 이젠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는 등 학생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학부모들의 호응도 좋아요. 앞으로 담임 선택제가 우리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는 초석이 될 겁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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