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가톨릭근로자회관 맞은편에 있는 작은 소조 한 점을 만나게 된다. 그 작품은 고풍스러운 거리의 모습과 함께 어우러져 너무나 자연스러워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작가는 '희망을 꿈꾸는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설명했지만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 작품을 보는 순간, 가난한 삶에 대한 고단함과 짙은 외로움을 느꼈다. 그것은 소년의 시선이 가톨릭근로자회관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팔다 남은 신문을 벤치에 놓고 하염없이 거리를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에서 소외된 삶에 지친 이미지 같은 것이 얼핏 보였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에 택시 운전기사로 일한 적이 있다. 노동자로 살겠다는 젊은 날의 열정이 선택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이 인간에게 가하는 가혹함이나 고단함을 쉽게 생각해 객기를 부린 면도 없지 않았다. 12시간 2교대는 지켜지지 않았고 지킬 수도 없었다. 아예 차를 24시간 자신이 모는 소위 도급제를 하지 않으면 생활을 꾸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노동조합은 꿈꿀 수 없었고 기사식당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그저 손님을 놓고 다투는 경쟁 상대에 불과했다. 정말 단지 하루를 어떻게든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만이 운전대를 잡게 했다. 더구나 세상의 모든 희망이었던 민중은 때로는 이유 없이 욕설을 퍼붓는 취객으로 마치 하인을 다루듯이 기사를 취급했다. 견딜 수 없었다. 노동의 고단함이 견딜 수 없었고 생계의 불안은 너무나 가혹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세상을 바꾸겠노라고 외쳤던 젊은 날의 신념이 무너지는 데 있었다. 결국 1년 8개월 만에 운전대를 놓고 말았다. 박노해의 시 구절처럼'전쟁 같은 밤 일'은 지금 다시 생각하면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두려움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그것은 어설프고 나약한 한 사내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초라한 삶의 편린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1980년대를 관통했던 양심과 정의 앞에 괴로워했던 젊은이들이 지나야 했던 정거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나이가 들어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가끔 기억한다. 정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제 그 소년의 곁에 가만히 앉아본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는다. 아직도 여전히 세상은 불공평하고 가진 자들은 더 탐욕스럽고 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네가 꿈꾸는 희망은 무엇인가를, 정말 여전히 사람이 희망인가를.
전태흥/(주)미래티엔씨 대표사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