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新월세시대'의 그늘…서민들 멀어지는 내집 마련의 꿈

주택 임대차 시장에 전세와 월세의 비중이 빠르게 역전되고 있다. 정부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주택 임대차 시장에 전세와 월세의 비중이 빠르게 역전되고 있다. 정부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팍팍한 서민들의 살림이 갈수록 쪼들리고 있다. 전'월세값이 치솟으면서 집 문제를 해결하는 데 허덕이고 있다. 주거는 의(衣)'식(食)'주(住)라는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 중 하나이지만 요즘은 이 기본을 해결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돈 없는 서민들에게는 '내 집 장만'이 평생의 소원이었을 정도로 주거의 안정이 꽤나 힘든 일이기는 했지만, 요즘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되고 있다. 월세 비중이 워낙 높아지다 보니 허덕허덕 한 달치 집세를 겨우 마련해 내다보면 저축이나 내 집 마련은 꿈도 못꿀 정도로 먼 일이 되고 있는 것. '신(新) 월세시대'가 우리사회에 드리우고 있는 그늘은 무척 깊고도 넓다.

◆월세시대, 허덕이는 서민들

이소연(35'대구시 수성구 매호동) 씨는 최근 살던 아파트(112㎡)의 전세기간이 다음 달 만기가 되면서 새로운 집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집주인이 "지금까지 4년 동안 세를 올리지 않았던데다 최근 전세값이 큰 폭으로 뛰었으니 4천만원을 인상해주던가 아니면 월세 40만원을 더 내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돈을 마련할 길이 마땅치 않아 이사를 생각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인근의 아파트단지를 샅샅이 훑어도 전세 아파트를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 씨는 "부동산중개업소마다 전세 물건을 물어보고 다니지만 심지어는 중개업소 사장님마저도 '전세 계약서 써본 게 벌써 몇 달도 더 된 일'이라고 할 정도로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도저히 안되면 울며 겨자먹기로 월세 30만원을 더 내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윤모(47'수성구 지산동) 씨는 아예 전세금을 빼 대출 갚는 데 사용하고 월세로 옮겨 앉았다. 이미 전세금 마련을 위해 대출받은 금액도 상당한데 여기에다 추가로 대출을 받으면 이자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윤 씨는 "차라리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60만원짜리 집으로 옮기면서 생긴 전세금 여유분은 대출금 상환에 썼다"며 "하지만 빠듯한 월급쟁이 살림에 애들은 커가는데 앞으로 어떻게 가계를 꾸려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우리나라 주거시장에 신 월세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아파트나 다가구주택 임대 계약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전세가 줄어든 자리를 월세나 반전세가 대체하는 구조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보증부 월세(반전세)는 집 주인들의 월세 선호가 강해지면서 월세와 전세 사이에 나타난 과도기적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전세 인상분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반전세. 달서구 상인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직원은 "재계약을 앞두고 있거나 새로 나온 매물의 상당수가 월세 또는 월세를 낀 반전세"라고 밝혔다.

대학가 원룸이나 1인 주거용 임대차 시장은 예전부터 월세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경북대 게시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원룸 임대 관련 게시물은 월세가 25만~35만원 수준이다. 고향이 영덕인 대학생 김모(21'여) 씨는 "매달 월세만 33만원에 전기'난방비 등을 더하면 주거에 드는 돈만 40만원이 넘는 상황이어서 부모님 뵐 때마다 면목이 없다"고 했다.

◆빠르게 재편되는 임대차 시장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국 전'월세 임대차 가구의 절반 정도인 49.69%가 월셋집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05년(45.85%)과 비교해서만도 3.84%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도시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 등 주로 월세 형태의 가구가 급증함에 따라 임대차 가구 중 월세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지방 역시 월세시대에서 예외가 아니다. 수도권보다 월세가격이 저렴하고 직장 등의 이유로 1년 이내 단기 거주하는 임대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오히려 수도권보다도 월세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곳도 상당수 있다. 경북은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이 64%로 전국 16개 시'도 중 제주와 전북에 이어 가장 높았고, 대구는 53%로 집계됐다. 전국적으로는 모두 7개 시'도가 월세 비중 60%를 넘은 곳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5년에는 2개 시'도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또 다른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셋집은 9% 줄어든 반면 월셋집은 무려 72%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또 임대 주택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도 2000년에는 28%였던 것이 지난해에는 43%로 높아졌다.

주택 임대시장이 빠르게 월세로 바뀌고 있다. 전세는 사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주거문화다. 예전에는 워낙 예금 금리가 높다 보니 목돈을 받아 굴리는 수익이 꽤 짭짤했던 데다, 대출 대신 전세금을 끼고 부동산을 매매하는 경우가 많아 전세 비중이 꽤 높았다.

하지만 정부의 저금리 정책이 계속 유지되면서 더 이상 전세금으로는 수익을 낳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고,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매월 고정적인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전세보다는 월세를 고집하는 이들이 늘면서 전세와 월세 비중이 빠르게 역전되고 있다. 현재 은행 금리가 연 3~5%에 그치고 있는 반면, 월세를 놓으면 연 7~10%에 가까운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전세대란도 월세에 대한 집주인들이 선호가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부동산 114 이진우 대구경북지사장은 "전셋값 상승세의 원인이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구매를 하려는 사람들이 줄고 전세에 머무르려는 수요가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내놓는 물건의 상당수가 월세이다 보니 전세의 몸값 상승을 부추기는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준비 안된 월세시대의 그늘

사실 과거에도 '월세'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 생겨난 원인이 달랐다. 과거에는 목돈을 내놓을 형편이 안 되는 저소득층들이 선호했던 것이 월세였던 것. 하지만 요즘은 수요자(세입자)들은 전세를 선호하는 반면에 공급자(집주인)가 임대차 수익을 노리기 위해 월세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민환 공인중개사협회 대구시지부 수성구지회장은 "요즘은 '1부(연 10%) 월세이율'이 적용되고 있다"며 "1천만원 전세금을 줄이는 대신 월 10만원의 월세를 내는 셈인데, 대신 금액이 커질수록 7% 선으로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준비없는 '월세시대'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주거비용의 급증은 가계 가처분소득을 줄여 사회적 스트레스를 더욱 급증시키기 때문이다.

대구 달서구 성당동 45㎡의 다가구주택에 4천만원 전세를 살았던 박춘길(48'여) 씨는 최근 반전세로 계약을 갱신했다. 집주인이 5천만원으로 전세금을 올려주든지 월세 10만원을 더 내라고 했지만 갑자기 큰 돈을 구할 수가 없어 월세를 10만원 더 내기로 한 것. 식당 주방일로 월 120만원을 버는 김 씨는 "120만원 수입에 10만원 월세 지출은 너무 큰돈"이라며 "지금까지도 겨우 가계를 꾸려왔는데 앞으로는 월세 10만원까지 내고 나면 적자 폭이 더 커질 것 같아 막막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 서민들의 주거 안정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공공임대 주택 공급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통해 전세 물량을 늘려 월세화로의 변화 속도를 늦추는 방안이다. 간접적인 효과겠지만 월세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행 월세 소득공제가 연 400만원으로 제한돼 있는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월 33만원을 넘어서는 월세를 부담하는 중산층의 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en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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