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살아난다 해도 그가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의 빈민굴일 뿐이다. 진정으로 그의 가르침에 감동하는 사람도 사회주의 국가의 권력 엘리트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의 소외된 지식층이거나 야심적인 몽상가들 쪽일 것이다. 만약 그가 사회주의 국가에 다시 태어난다면 틀림없이 자기주장의 많은 부분을 철회하거나 수정해야 할 것이며, 끝내 그것을 거부한다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처형대뿐일 것이다. 그 죄목은 반혁명이다.'
이문열의 소설 영웅시대(英雄時代)의 말미를 장식하고 있는 '이동영의 노트'란 주인공의 글 중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영웅시대는 6'25전쟁이 초래한 불행한 어느 가족사와 두 개의 이념이 빚어낸 동족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주인공 이동영은 자신의 이념을 찾아 월북했지만 좌절과 파멸의 길을 걸어야 했고, 남한에 남은 식구들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딱지를 단 채 참담한 삶을 연명해 간다는 것이다.
영웅시대는 6'25전쟁을 중심으로 한 이념과 인간의 문제를 치열하게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문학사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 또한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주인공의 자각은 이념의 비인간성을 대변한다.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주제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들에게'란 이름으로 쓴 긴 편지에서도 이 같은 말을 남긴다. '아비의 시대는 윤리성과 자주성과 완결성이 결여된 영웅시대였지만, 너희는 휴머니즘과 민족주의를 추구하라'는 내용이다. 소설의 이야기와는 달리 북한은 아직도 '영웅시대'인 데 반해 남한은 '영웅 부재의 시대'가 아닌지 모르겠다.
세습 왕조를 획책하는 사이비 공산주의 이념에 매몰된 북한 주민들은 3대의 영웅시대를 살고 있고, 독재와 혁명 그리고 쿠데타와 민중 봉기를 거듭하며 민주사회를 이룬 남한 국민들은 영웅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더 일희일비하며 그것도 모자라 북녘의 영웅을 찬양하는 사람들까지 양산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영웅이 지배하는 북한에서 살게 된다면, 과연 어떤 노트에 어떤 편지를 남길까.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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