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절대 죽지 않는다.'
2년 전 서울에서 산악인 박영석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에베레스트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고 귀국한 직후였다. 전 세계 산악인들의 발길을 한 번도 허용하지 않은 미개척 코스여서 그 의미는 더욱 컸다. 이미 히말라야 14좌 완등뿐 아니라 남극점'북극점까지 정복한 그가 지천명을 앞둔 나이에도 코리안 루트라는 첫 장을 연 것이다.
박영석의 첫인상은 우직한 산사나이, 그 자체였다. 전인미답의 일을 했음에도 생색을 내지 않았다.
그는 대구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장병호 대구등산학교장을 비롯한 대구의 산악인들과 절친했다. 지역대학 출신으로 이번에 함께 사고를 당한 신동민'강기석 대원과는 생사 고락을 같이 하던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끝내고도 저녁 회식자리에 기자를 끼워 넣고 정을 냈다. 이 자리에서 대구대를 졸업한 신동민 대원은 "매일신문사와도 에베레스트 등반을 함께했다"고 했다. 본사 취재단이 2000년 대구원정대와 함께 갔을 때를 떠올린 것이다.
박영석은 인터뷰를 할 때 "산에서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번처럼 거대한 눈사태를 만나 크레바스 또는 베르크슈룬트(산과 암벽 사이 거대한 틈)에 떨어졌을 때 두 번이나 극적으로 살아났다. 이 때문에 가족들과 동료 산악인들은 이번에도 그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박영석은 건망증이 심했다. 16년 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반의 후유증이다. 손에 든 건은 다 잊어버린다고 했다. 휴대폰은 100개 넘게 잊어버렸단다. 그래서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고 다닌다. "뇌세포가 많이 죽어 다른 뇌세포를 이용해 기억해야 때문이기도 하고 습관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며 씩웃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늘이 내려준 산 사나이는 하늘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하늘나라로 갔다. 절대로 죽지 않고, 살아서 '박영석의 탐험학교'를 운영하겠다는 그의 꿈은 누군가 대신할 것이다. 함께 간 신동민'강기석 두 산악인도 우리들에게 모험과 도전정신을 심어줄 것이라 믿고 싶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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