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고부지간
바로 며칠 전이다. 퇴근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부모님께서 불쑥 찾아오셨다. 팔이 아프신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신 것이다. 아버지 손에는 큼직한 프라이팬이 하나 들려 있었다. 화들짝 놀라면서 '왠 프라이팬이냐?'고 묻자 다짜고짜 어머니께서 "너희들 프라이팬이 하도 낡아서 마침 길거리에 프라이팬을 보상해 준다는 상인이 있어 내 돈 만오천원을 보태서 이만원을 주고 샀다"고 하셨다. 그때 아내가 들어왔다. 그 소리를 들은 아내는 '고맙다'며 연신 좋아라 웃기만 했다. 부모님이 나가시고 난 뒤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어머니께서 갖고 가신 우리 집 프라이팬은 팔만원에 구입한 것이란다. 게다가 아직 더 사용할 수 있는 것이란다. 값비싼 프라이팬을 어머니께서 단돈 오천원을 받고 바꾸시고서는 새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네 아들, 며느리를 위한답시고 값싼 중국산 프라이팬을 손수 구입하여 주신 것이다. 그래도 서운하다고 내색하지 않는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시골서 70여 년을 두 분께서 함께 농사만 지으시며 사시다가 5년 전쯤에 몸이 연로하셔서 우리 곁으로 오셨다. 처음 몇 년은 우리와 함께 지내셨다. 그러시다 부모님께서는 직장 다니는 며느리에게 폐가 된다고 바로 도로 건너 조그마한 아파트로 분가(?)를 하셨다.
미안한 마음에 아내는 가끔 부모님께 계절에 맞는 때깔 좋은 새 옷을 사 드린다. 부모님은 늘 시골서 헌옷만 입으셨기에 새 옷 입는 것을 어색해하신다.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다 입지도 못할 옷이 너무 많다'며 나무라신다. 당연히 오래된 옷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그리고는 새 옷을 입어보시면서 꼭 옷의 가격을 물어보신다. 아내는 그때마다 옷 가격표에서 '0' 하나를 떼어서 얘기를 한다. 그래야만 안심하시고 입으신다. 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노라면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고부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잘 해야 본전이라는데 나는 정말 복이 많은 놈이다.
성백광(대구 북구 구암동)
♥수필2-야구와 인생
퇴근길이다. '오늘은 어느 팀이 이겼을까? 삼성이 이겨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걸어오는 길목에는 가게와 식당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연기 자욱한 막창집 앞을 지날 때면 구수한 냄새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먼발치로 TV 화면을 힐끗 쳐다본다. '지금쯤 몇 점을 냈을까?' 침침한 시야로 들어오는 숫자를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일에 지쳐 다리가 아플 법도 한데 오늘은 아플 여유조차도 없다. 걸음은 점점 빨라진다. 딩동! "누가 이겼노? 삼성이 이겼다고? 와!!!" 나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내가 야구를 처음 접한 때는 1983년도였다. 그 시절, 식구들은 제각기 직장과 학교로 떠나고 집에는 시아버지와 갓 시집온 나밖에 없었다. 낮에는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저녁 준비를 하는데, 그때마다 TV에서는 늘 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식사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고 나면 시아버지와 함께 야구 중계를 보았다. 그때는 규칙을 모르고 야구를 보니 경기 내용을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밤 9시가 넘어서 돌아오는 식구들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어 시아버지께 야구 규칙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고, 야구를 즐겨보게 되었다.
내가 그러했듯 많은 사람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남모를 아픔을 잠시라도 잊어버리고 싶어서 야구를 본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 야구를 본다. 어찌 보면 하나의 스포츠일 뿐인 야구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벅찬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오늘도 야구장 입구에는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끝없는 행렬이 이어진다. 언제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좋은 친구 같은 야구, 앞으로도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
김귀분(대구 중구 남산 3동)
♥수필3-혼불문학관
수필과 지성아카데미 문학도들이 가을 문학 기행 목적지를 남원 혼불문학관과 조계산 송광사로 정했다. 가을비가 소녀의 웃음처럼 예쁘게 내리는 아침이었다.
지정된 곳에 이르니 많은 분들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갈 차는 정시에 이르렀고 가는 길에 예쁘고 고운 비가 차창을 두드리며 반겨 맞는 듯했다. 얼마쯤 갔을까? 비는 그쳤고 한낮이 가까울 무렵 혼불문학관에 이르렀다.
문학관은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하여 남원시에서 지었다. 혼불, 그것은 근원뿌리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나를 있게 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캐고 싶었다는 것이다.
혼불문학관에 들어섰다. 벽에는 '혼불'이 세로로 크게 붙어 있었다. 해설 도중 관장님이 내 목에 걸려 있는 이름표를 보고 낭송해 보라고 하셨다. 좋은 글이라서 정신을 가다듬고 정성 들여 낭송하였다.
"혼불,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갚을 길 없는 큰 빚을 지고 도망가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좀처럼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모아놓은 자료만을 어지럽게 쌓아둔 채 핑계만 있으면 안 써 보려고 일부러 한눈을 팔던 처음과 달리 거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쓰기 시작한 이야기 '혼불'은 드디어 나도 어쩌지 못할 불길로 나를 사로잡고 말았다. 최명희"
위의 글은 작가 최명희의 내면세계를 솔직하게 풀어낸 글로 혼불문학관의 백미였다. 비 오는 날의 가을 문학 기행은 삶의 즐거움을 더했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시-비가 와서
가을비가 이틀째 추적추적 내리는 날
호박죽을 끓여 엄마 보러 가는 길에
밥장사하는 친구 집에 한 그릇 놓고 왔다
얼마 있다 그녀가 전화를 했다
니 꼭 울 엄마 같다
느닷없는 친구 말에 정적이 흐르고
그녀가 흐느끼는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한다.
니 꼭 울 엄마 같다
열다섯 살부터 식구들 밥해 먹이고
시집와서 삼십년 손님들 밥해대고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남이 해준 따뜻한 음식을 처음 먹어 봤다고 한다
당황한 나는 우냐고 물었다
전화 너머 그녀가 하는 말
비가 와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달래보겠다고
얼른 며느리 봐서 뜨신 밥 얻어먹고 살아라는 내 말에
언젠가 나도 그런 날이 오겠지 한다
그녀에게
선녀 같은 참한 며느리가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정종숙(대구 달서구 이곡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정경준(대구 수성구 만촌1동)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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