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엇이 보이는가? 자유!…한윤조기자의 패러글라이딩 도전기

지난달 30일 합천 대암산 활공장(해발 591m)에서의 4회 비행.
지난달 30일 합천 대암산 활공장(해발 591m)에서의 4회 비행.
패러글라이딩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지상에서 기체를 들어 올리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보통 4~6주 정도가 소요된다.
패러글라이딩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지상에서 기체를 들어 올리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보통 4~6주 정도가 소요된다.
한윤조기자
한윤조기자

무더운 2011년 여름, 한 드라마에서는 암에 걸린 여자 주인공이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엄마를 웃게 하기, 갖고 싶고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 참지 않기, 탱고배우기, 웨딩드레스 입어보기…. 드라마는 바쁘다고, 경제적으로 쪼들린단 핑계로 수많은 꿈들을 미뤄두기만 했던 여자 주인공이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계기로 그동안 품고 살았던 작은 소망들을 하나하나 실천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나도 하얀 종이를 하나 꺼내 펼쳤다. '나의 버킷리스트'. 과연 난 무엇을 소망하며 살아가는지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딱 하나를 쓰고 나니 쓸 게 없었다. '하늘을 훨훨 날아보기!' 현실에 발 묶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이었을까. 그것 외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만큼 간절한 것이 떠오르질 않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날아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회사일이 바쁘단 핑계로 주말까지도 늘 사무실에 나와 시간을 죽이던(?) 습관을 바로잡고, 나도 나를 위해 뭔가 즐거운 일을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것이다. 장르는 패러글라이딩, D-Day는 10월 1일로 정했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바람처럼 훨훨 나는 상상을 하면서!

◆날자, 날자, 한번 날아보자꾸나

무턱대고 인터넷을 검색해 패러글라이딩스쿨을 찾았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껏 기자 생활하면서 초경량비행기도 타봤고, 우방타워의 스카이점프도 해봤고, 평소에 '겁 없다'는 소리 좀 듣는 편이니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체험비행도 한 번 해보지 않은 채, 여자가 겁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요"라며 씨익 웃음으로 응수했다. 당장은 그냥 날고 싶다는 욕망으로만 가득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당장 패러글라이더를 매고 훌쩍 뛰어내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운전을 배워야 핸들을 잡을 수 있는 것처럼 패러글라이더 조종법부터 배워야 했던 것이다. 아뿔싸! 적어도 대여섯 번의 지상 훈련을 받은 뒤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활공장에서 이륙할 수 있다고 했다. 주말마다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면 적어도 이륙을 위한 사전 교육에만 1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어찌 됐든 날아보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으니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날고 싶었다.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과 목요일 저녁까지 훈련에 할애하면 초단기에 교육을 완료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2주 속성 플랜을 세웠다.

비행 교육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일단 날아올랐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30회 비행을 채워야 '연습조종사' 자격이 주어지고, 다시 20회 비행을 더 채워야 대한활공협회로부터 '조종사' 자격증이 주어진다. 연습조종사까지는 6개월, 조종사까지는 1년가량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하지만 조종사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전문가는 아니다. 겨우 발걸음을 떼 놓은 정도랄까. 바람과 기상을 이해하고 기체를 마치 내 몸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칼을 뽑아 들었으니 물러설 수는 없는 일. 연습조종사 과정 교육에 필요한 회비 50만원을 납부하고 '비행아가씨'의 길을 가기로 했다.

◆온몸이 멍들어도 날겠다는 일념으로

10월 1일, 첫날은 '견학'이라는 이름으로 현풍 대니산에서 다른 회원들이 신나게 활공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상 훈련. 땅에서 먼저 기체를 들어 올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일찌감치 추수가 끝난 논에서 하네스(기체와 몸을 연결할 수 있게 만든 장비로 공중에서 의자처럼 앉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를 메는 법부터 배우고 헬멧을 착용한 뒤 캐노피(낙하산처럼 생긴 부분)를 걸었다. 하네스 착용은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다리와 허리, 어깨가 제대로 조여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장비 무게부터가 장난이 아니다. 20㎏을 훨씬 넘어서는 무게에 몸이 휘청휘청댈 정도였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장비를 메고 산꼭대기까지 걸어야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전국 대부분의 활공장에는 임도가 잘 닦여 있어 차량이 활공장 근처까지 근접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기체가 떠오르는 데는 바람의 양력을 이용한다. 특수한 천을 여러 개의 조각으로 만든 캐노피는 비행기 날개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게 만들어졌다. 캐노피의 앞면은 공기가 유입이 되도록 열려 있고, 뒷면은 닫혀 있는데 맞바람을 맞으면서 진행하는 방향의 수직으로 양력을 만들어 위로 상승하는 원리인 것이다.

'하나~ 둘~ 셋'을 외치며 힘차게 앞으로 뛰어나가면 양력을 통해 기체가 하늘로 떠오르게 된다. 무작정 달린다고 해서 이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레포츠이기 때문에 잠시 속도를 줄여 기체가 하늘을 향해 제대로 세워졌는지를 확인한 뒤 다시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발을 내달으면서 이륙하는 방식이다.

지상 연습은 이렇게 이륙하는 과정을 반복연습함으로써 기체의 반응을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이다. 캐노피가 들려지는 데 필요한 바람은 시속 20㎞. 바람이 있을 때는 조금만 힘을 줘도 금세 기체가 올라오지만 바람이 약할 때는 힘껏 달려 시속 20㎞에 해당하는 바람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 맞바람을 타야 하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을 잘 살펴야 하며, 바람이 너무 약하거나 반대로 너무 강한 날은 비행을 할 수가 없다.

지상훈련은 마치 군인들의 '완전군장 훈련'을 방불케 했다. 무거운 장비를 메고 뛰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캐노피와 하네스를 연결하는 브레이크(산줄)에 손목이 쓸려 팔은 멍투성이가 됐다. 대여섯 번만 뛰어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될 정도. 비행 선배들은 "그나마 바람 시원한 가을철에 시작했으니 천만다행"이라며 약을 올렸다.

그래도 평소 나름(!) 운동신경은 살아있다고 자부하는 윤조 씨. 4회 훈련 후 테스트를 통과해 이륙준비를 완료했다. 테스트는 기체를 공중에 띄워 5m 이상을 달려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10회 중 7회를 성공해야 한다. 8번 시도에 7번 성공으로 가뿐하게 이륙준비 완료!

◆상쾌한 첫 비행의 쾌감

가슴 설레는 첫 비행은 10월 15일 날이었다. 현풍 구지에 있는 대니산에는 남좌와 북좌 활공장 2곳이 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둘 중 한 곳을 선택해 이륙을 하는 것이다. 북좌는 조금 더 경사가 완만한 대신 이륙하기가 쉽지 않고, 남좌는 가파른 낭떠러지라 쉽게 이륙을 할 수 있는 대신 두려움이 훨씬 더한 곳이다. 이날의 바람 방향은 남좌.

첫 비행에 앞서 일단 텐덤비행(2인 체험비행)을 해야 했다. 최종적으로 하늘에 떠서 지상훈련을 통해 배운 것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것이다. 어찌 됐든 드디어 난다는 사실에 신이 난 윤조 씨. 팔랑팔랑 뛰어가 잽싸게 헬멧 집어쓰고, 하네스 착용하고 별 두려움 없이 날기를 시도했다. 몸이 붕 떠올랐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지나자, 바람 소리만이 귓전에 가득했다. 산줄을 잡아당겨 좌로, 우로 턴하는 법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비행경로도 확인한 뒤 가볍게 땅에 착륙했다.

그리고 곧장 다시 활공장으로 올라가 꿈에 그리던 첫 비행을 시도했다. 기분 좋은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드디어 내가 한 마리 새가 되는 순간이다. "바람이 좀 세긴 한데 그래도 뛰어볼래?"라는 스쿨장의 말에 앞뒤 가리지 않고 하겠다고 답을 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데 바람 따위가 나를 막을쏘냐!

그래도 조금 겁은 났던지 처음에는 기체를 너무 천천히 들어 올려 실패. 다시 장비를 정돈하고 "하나, 둘, 셋 출발!"을 외치고 앞으로 내달리는 순간, 발이 붕 떠오르며 내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상쾌함! 내 발밑에 세상이 펼쳐진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비행기 안의 작은 창으로 내다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탁 트인 광경이었다.

착륙장 근처에 와서는 무전 지시에 따라 좌우로 돌며 고도를 낮추는데 빙그르르 도는 느낌이 상쾌했다. 그리고 두 발로 가뿐하게 착지 성공. 기대만큼 스릴 넘치진 않았지만 난생처음으로 무한한 자유를 맛본 달콤한 순간이었다.

이제 겨우 날개 단 윤조 씨, 매주 뛰어내릴 순간만을 이제나저제나 학수고대하며 활공장을 배회하고 있다. 지금껏 4회 비행 성공! 아직은 새처럼 자유롭기보다는 그냥 산꼭대기에서 지상으로 뛰어내리는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롭게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순간을 기대한다. 오늘도 난 하늘을 바라본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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