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글로벌 경제위기는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다시 미국이나 유럽이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돈을 쏟아붓는다 해도 이미 실물경제에서 시작된 불황의 그림자를 걷어내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다.
경제란 게 원래 그렇다. 멀쩡할 때는 조금만 돈을 늘리거나 금리를 건드려도 시장에서 반응이 예민하게 움직이다가, 한 번 수렁으로 들어가면 백약이 무효가 된 듯 꼼짝을 하지 않는다. 결국은 시간이 흐를 만큼 흐르고 고통이 어느 정도 끝을 보아야 다시 바닥에서부터 엔진이 돌아가게 된다. 그런 것을 두고 장기불황이라고 한다.
몇 가지 실례를 통해 현재 실물경제 상황의 심각성을 짚어보면 이렇다. 우선 중국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 과열경기와 물가불안을 잡기 위해 긴축을 상당 기간 실시해온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축으로 번져가는 현재의 국면에서 보면 해외 수요의 위축으로부터 급작스런 경기수축의 가능성이 염려된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분기에 9.7%, 2분기에 9.5%, 3분기에 9.3%를 기록하며 9%대를 지켜왔지만, 4분기에는 7%대의 성장률로 주저앉을 수도 있는 분위기이다. 이러한 조짐은 중국의 증시에서 감지되고 있는데, 10월 이후 중국의 대표증시인 상하이 주식시장의 종합주가지수가 2009년 3월 이래 최저가로 추락하고 있다.
만일 여기서 계속 중국 증시가 뒤로 물러선다면 아마도 중국 경제는 수출과 내수부문에서 낙차가 큰 경착륙의 경기침체로 접어들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진짜 뇌관은 부동산이다. 중국은 그동안 정말 거침없이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주택은 물론이고 특히 도시부동산들이 세상의 돈을 다 빨아들이는 기세로 올라 버블의 소지가 다분한 실정이다. 요즘 그동안 중국 도시부동산 개발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광저우, 상하이 부동산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는 것도 좋지 않는 신호의 하나이다. 그런 가운데 세계 철강시장에서 재고가 늘어나고 있고,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아직은 철강의 신생국인 중국이 아마도 자금난과 재고부담으로 밀어내기를 하면서 가중시킬 소지가 엿보인다.
게다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적인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향후 장기간 경제가 어려울 것에 대비해 설비투자를 중단하거나 심지어 취소하거나 줄이기 시작하고 있다. 근년에 없던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아마도 상당한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히 요즘 LCD 가격이나 폴리실리콘 가격들의 하락세는 디플레이션의 전조로 보여질 만큼 느낌이 나쁘다. 여기서 사태가 자동차 판매부진과 재고증가로 번지면 상황은 한순간에 글로벌 실물경제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사실 현재의 국제 원자재 가격이나 에너지 가격, 그리고 금 값으로 볼 때 분명히 이런 상태로 세계경제가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불과 몇 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원유가격이 몇 배나 오르고 금값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뛰고, 식료품값은 서민들의 등을 치고 있으니 어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무슨 재주로 이런 터무니없는 원가를 부담하며 기업들이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넘기겠으며, 소비자는 무슨 돈이 있어 거침없이 소비를 지속해 나가겠는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항상 반복하는 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갑자기 오른 가격들은 반드시 시간이 흐르면 하락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시 나름의 시간과 고통과 인내를 감수해야 그 자리로 돌아간다. 이제 세계경제는 그동안 경계없이 오르던 원자재 가격, 에너지 가격, 희토류 가격, 금값 등을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러는 사이 글로벌 경제는 장기불황을 만날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 대표기업들도 상당기간 현금유동성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하겠지만, 특히 동남권 경제에 주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인근 지역에는 포항, 울산, 창원, 구미, 거제 등에 설비투자를 줄이거나 재고감소에 대비해야 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칫 대구 부산은 이들 주변 산업도시가 경기가 좋을 때도 그다지 효과가 없었지만, 나쁠 때도 여파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지역의 지방 정부는 실업증가나 하청업체 자금난, 그로 인한 지역소비 위축 등 실질적인 위기대응 능력을 가져야 한다.
만일 유럽에서 그리스 자금지원이 현실화되어 그 영향으로 세계증시가 일제히 반등하면 오히려 그 이후에 그동안 본심을 숨기고 있던 정리성 매물들이 글로벌 증시를 압박하면서 실물경제의 우려는 그때가서 현실로 나타날 소지가 있다. 그리고 그 여파가 가장 클 가능성이 있다면 이번엔 중국이 그중 하나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여타 국가에 비해 비교적 선전하는 우리 경제이지만 한층 조심하고 미리 미리 대비하자.
엄길청/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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