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의 빼어난 경치는 시인을 낳았고 비옥한 평야는 학자를 배출했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노계 박인로는 금호강 발원지인 포항 죽장면 가사천의 입암리를 찾아 입암(立巖)과 주변 절경을 시조 '입암이십구곡'과 가사 '입암별곡'으로 노래했다.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는 부모상을 당했을 때 영천 임고면 자호천변 양항리에 여막을 짓고 처음으로 각각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성리학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영천 금호 출신인 최무선 장군은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과 화약무기를 제조해 나라를 빛낸 과학자 25인에 첫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시가문학의 산실 가사천 '입암'
'無情히 서난 바회 有情하야 보이나다/ 最靈한 吾人도 直立不倚 어렵거날/ 萬古애 곳게 선 저 얼구리 고칠 적이 업나다.'
노계 박인로(1561∼1642)는 만년에 입암을 찾아 우뚝 선 바위의 모습과 풍상에 불변하는 기상을 노래했다. 노계는 당시 영천 입암에 머물던 학자 여헌 장현광과 교유하며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시조 29수의 '입암이십구곡'과 가사 '입암별곡'을 남겼다.
시조 29수 중 선바위 입암을 노래한 것이 10수나 된다. 입암 자체를 노래한 시조가 4수이고 입암과 문답형식으로 6수를 지었다. 입암리의 경치를 노래한 작품이 노계 시조 68수의 3분의 1을 넘는다.
윤해희(69) 전 한국어문교육학회 부회장은 "입암의 산수는 노계 시조 29수의 소재가 될 정도로 많이 노래된 시가문학의 현장이다"며 "노계는 사물의 외경 묘사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서 인간의 바른 삶의 자세를 노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늦가을 죽장면 소재지를 지나 솔안마을에 들어서면 시냇가에 솟아오른 듯한 입암을 만날 수 있다. 높이가 20여m로 기암절벽의 작은 산처럼 보인다. 입암 꼭대기에는 굴참나무 등 10여 그루의 작은 나무들이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었다. 입암 아래쪽은 오랜 세월 물살에 의해 일부분 떨어져 나가 마치 동굴처럼 형성됐다. 정면에서 보면 비스듬히 누운 것처럼 보이는 것도 오른쪽 부분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여헌은 당시 '바위의 동남쪽 밑바닥 부분이 물살에 부딪쳐 패어 농사일의 틈을 기다려 돌로 메우기로 했다'고 잡저(雜著)에 기록했다.
노계의 시조에 나오는 입암 옆 계구대에도 굴참나무와 단풍나무들이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렸다. 기여암 앞 절벽에 들어선 정사에는 작은 방이 2칸 보인다. 동쪽 방에 우란재(友蘭齋), 서쪽 방에 열송재(悅松齋)라는 편액도 걸려 있다. 중수 때 일제당으로 부른 이 정사에 올라 노계는 입압의 절경을 노래했다.
'塵世上 살암들아 立巖風景 보앗난다/ 武陵이 죠타 한들 이예셔 나알쇼냐/ 峰頭애 뜬 白鶴은 雲間애 츔을 츄고/ 深源의 숨은 杜鵑 月下의 슬피운다.'
노계의 가사 입암별곡의 앞 부분이다. 노계는 이 가사에서 여헌에 의해 이름 붙여진 입암 28경을 노래했다.
입암리 송내교를 지나면 입암서원 앞 가사천변 소공원에 '노계 박인로 시비'가 눈에 들어온다. 노계의 출생지인 영천 북안면 도천리 도계서원 앞에는 '노계시비'가 있다. 뒷면에 노계의 시조 '조홍시가'(早紅詩歌)가 새겨져 있다. 도계서원 앞 작은 저수지를 지나면 동쪽 산자락에 노계의 묘소가 나지막한 비석 옆에 자리하고 있다. 묘소 가는 길 가에 하얀 들꽃이 활짝 펴 길손들을 반긴다. 노계가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낸 도천리 마을에는 가을 햇볕에 감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입암 28경' 절경 간직
여헌 장현광(1554∼1637)은 임진왜란 이후 권극립, 정사상, 정사진, 손우남 등 영양(永陽'영천 옛지명) 벗들의 요청으로 입암리에 들어와 그들과 함께 28경을 명명했다. 바위, 산봉우리, 골짜기, 시냇물, 다리 등 입암의 절경 28곳을 골라 이름을 지었다.
여헌은 한시 '입암십삼영' 및 12수로 입암의 경치를 읊었으며 '입암기' '입암정사기' 등 기문을 남겼다. 입암 28경은 입암서원 위쪽 욕학담에서 가사천을 따라 내려오면서 채약동, 상엄대, 피세대, 입암, 상두석, 경심대, 수어연, 계구대, 기여암, 합류대, 조월탄, 세이담 등으로 이어진다. 입암1교 다리 건설로 훼손된 합류대, 하천 공사로 흐릿해진 조월탄, 솔숲이 사라진 야연림 등을 제외하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입암의 아래쪽 일부분이 물살에 휩쓸려 나갔지만 앞쪽 경심대, 수어연 등이 계구대, 일제당, 기여암과 어울려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가사천 옆 둑길을 따라 노계와 여헌의 작품 소재가 된 입암 절경을 둘러볼 수 있는 '시문학의 길'을 만든다면 금호강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 같다.
◆포은 정몽주의 성리학 실천지
영천 임고면 임고천변의 마을 우항리는 포은 정몽주(1337∼1392)의 출생지이자 성리학의 실천지이다. 포은은 19세 때 부친상을 당해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상례에 정성을 다했다. 유교의 예법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확립하고 성리학을 생활이념으로 실천했다. 29세 때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당시 고려사회에서는 유교적 상례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사대부들도 100일 후 탈상했다. 포은의 지극한 정성이 알려져 조정에서 출생지인 우항리에 '효자리'라는 비를 세웠다.
포은은 부친상 및 모친상 때 영천 임고면 우항리 생가에서 약 1.5㎞ 떨어진 양항리 현 임고서원 위치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다고 한다. 포은이 당시 머물렀을 우항리 생가터 추정지는 묘지로 변했으며 곳곳에 잡초만 무성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전민욱 경북문화관광해설사는 "포은은 양항리 여막에서 시묘살이 중 매일 아침저녁으로 오른쪽 골짜기를 따라 약 2㎞를 걸어서 부모 묘소를 둘러봤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포은의 위패를 모신 자호천변 임고서원에는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 은행나무 옆에서는 임고서원 성역화 작업이 한창이다. 선죽교가 모습을 드러내 영천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영천시 창구동 금호강변에는 포은이 1368년 당시 부사 이용과 함께 건립한 조양각이 있다. 원래 이름은 '명원루'로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영남 3루에 속한다. 조양각 벽면에는 포은을 비롯해 서거정, 김종직, 이이, 박인로 등 명현들의 시판 70여 개가 걸려 있다.
조양각은 영천에 도착한 조선통신사 일행을 위해 전별연을 베푼 곳이기도 하다. 경상감사가 잔치를 열어 풍성한 음식을 제공했으며 금호강변에서 마상재 공연도 펼쳤다.
◆화약 제조 최무선의 고향
고려말 화약과 화약무기를 개발해 왜구를 소탕한 최무선(1325∼1395)은 영천에서 태어났다. 영천 금호읍에서 대창으로 가다 오계공단을 지나면 원기리 마단(麻丹)마을에 최무선 장군의 출생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1995년 문화체육부로부터 최무선 장군이 '4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자 영천향토사연구회에서 그의 생가터 추정지에 '최무선장군유적지'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최무선은 어린 시절 왜구의 노략질을 목격했으며 관리의 봉급을 담당한 광흥창의 관리인 아버지로부터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돼 화약 개발에 몰두하게 된다. 왜구에게 곡물을 빼앗길 경우 관리들에게 봉급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무선은 화약을 개발한 뒤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무기인 주화(走火) 등 화약무기 18종을 만들었다. 1380년에는 각종 화기로 무장한 전함 100척을 이끌고 나가 싸워 진포(금강하구)에서 왜선 500여 척을 격파했다.
영천시는 최무선 장군의 업적 및 과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금호읍 원기리 옛 창산초교 일원에 건립한 '최무선과학관'을 10월 5일부터 시범운영하고 있다.
◆담백한 영천 숯불고기 '일품'
금호강 상류 영천에는 드라이브와 걷기, 등산 코스 등이 다양하다.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의 경우 차로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 정상 부근에서 시루봉까지 난 천수누림길을 걸어볼 만하다. 목재 데크길을 걷다 보면 아름다운 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 가을에 걸으면 파란 하늘과 산 아래 노랗게 물든 단풍을 모두 볼 수 있다. 어린이와 함께라면 별빛마을의 보현산천문과학관에 들러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등산을 좋아하면 팔공산 치산계곡이 좋다. 차로 신녕 치산마을을 지나 수도사 옆에 주차한 뒤 오르면 된다. 소나무 숲 속의 그림 같은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팔공산의 절경 공산폭포를 볼 수 있다. 공산폭포를 지나 동봉으로 가거나 옛길을 따라 도마재를 오를 수도 있다.
조용한 숲길이 그리우면 은해사 쪽을 권할 만하다. 입구 솔밭의 솔향을 맡으며 산책하다 보면 마음까지 맑아진다. 팔공산 계곡을 둘러본 뒤 성보박물관에 들러 추사 김정희의 친필 현판도 감상할 수 있다. 등산이나 산책 후에는 황산염천으로 알려진 영천 서산동 사일온천에 들러 피로를 씻어낼 수 있다.
영천에는 대도시보다 값싸고 담백한 쇠고기로 이름난 곳이 많다. 육회를 좋아하면 버스터미널 옆 편대장 영화식당이 제격이다. 구운 고기를 즐긴다면 영천 도남동의 한우숯불단지나 금호의 한우프라자를 찾을 만하다.
글'사진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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