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사회 모순과 지방 경제

한국 사회 화두 중 하나가 '골목 경제 살리기'다. 골목 경제는 자영업자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목 좋은 곳에 가게 하나를 꾸리고 있으면 먹고살기에 별다른 부족함이 없었다. 골목 경제를 지탱했던 자영업자들은 '중산층'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열심히 일하면 자신들의 재력도 쌓일 것이란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수출 역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기업들이 업종을 불문하고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섰고 자영업자들의 삶의 터전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유통 공룡으로 불리는 대형마트와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등장이다. 엄청난 자본과 영업력을 앞세워 수십 년 동안 자영업자들이 지켜온 상권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골목 경제가 무너진 원인에는 한국만의 도시 구조도 한몫을 했다. 바로 주거 공간의 보통명사가 된 아파트다. 재개발'재건축에 밀려 주택들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골목 경제는 기반을 잃기 시작했다. 출근길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직장으로, 일을 마치고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돌아오는 동선은 골목 가게를 찾을 수 있는 '여유'를 빼앗아 버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쇼핑은 넉넉한 주차장이 있는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의 몫이 됐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뒤늦게 대책을 세우고 각종 규제에 들어갔지만 골목 경제가 회생하기에는 이미 실기를 한 느낌이 적지 않다. 골목 상권을 고려한 도시계획이 없다면 한번 들어선 도시 공간 구조는 수십 년간 바꾸기가 어렵다.

무너진 골목 경제와 비슷한 처지가 있다. 바로 피폐해진 '지방 경제'다.

수십 년 동안 지방을 대표하던 기업들이 거의 사라졌고 이들이 있던 자리에는 대기업 하청'하도급 업체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구조가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이 됐고 지방 기업의 자생력은 거의 상실된 탓이다. 이제 지방 경제 살리기에 목말라 하는 지자체들조차 향토 기업 육성보다는 대기업 공장 유치에 더욱 목을 매는 형편이 됐다. 지방 경제는 서울 대기업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맨 아래 끝자락에 위치한 하도급, 하청 구조가 됐다.

대선과 총선이 다가오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기성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안철수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이다.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내세우는 화두는 '지독한 양극화'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다. 부의 편중으로 중산층의 대열에서 밀려난 이들과 실직 위기 속에 사는 젊은 층들이 새로운 정치 세력에 대해 열광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 세력들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 타파와 극소수 상류층이 가진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성공 벤처기업인으로 불리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5일 자신의 주식 50%를 내놓겠다고 했다. 자산 가치로 따지면 1천500억 원에 이른다. 중소 하청업체나 사회 기부에 너무도 인색한 대기업들을 향한 '조롱'에 가까운 자기 실천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바람 속'에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 우리 사회 가장 큰 모순의 하나인 '지방 경제의 몰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2002년 대선의 화두는 '지방분권'이었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모순으로 '수도권 공화국'이 지적됐고 노무현, 이회창 후보 모두 지방분권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지방 경제의 추락은 진행형이지만 지방분권의 목소리는 점차 힘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사는 기형적인 구조지만 아직 절반은 '지방'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지방은 별다른 희망이 없다. 젊은이들이 취업을 할 기업도 없고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하다. 수도권이란 좁은 지역에 대기업과 자본의 90%가 몰려 있다. 나머지 10%를 지방이 나누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부의 재분배와 국민들의 삶을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방 경제의 회생'이 절실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권이 가진 권력과 돈의 지방으로의 이동이 필요하다.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새로운 바람이 '지방분권'으로 다시 옮겨 붙기를 기대해본다.

이재협/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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