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치와 유머

유머와 풍자의 대상으로 정치인만큼 좋은 것이 없다. 힘든 세상에 정치인을 맘껏 비꼬고 조롱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서민들의 심리다. 요즘 인터넷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정치 불신이 극도로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유머 사이트에도 정치 관련 유머로 넘쳐난다. 그렇지만 해학과 재치와는 거리가 먼 수준 이하의 유머가 대부분이다. 씹고 매도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외국은 어떨까. 언론 관련 서적에는 정치 관련 보도의 실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한 편의 코미디와 다를 바 없다. 예전 뉴욕의 한 신문사는 '정치인들은 모두 바보 멍청이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은 뒤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았다. 상'하원 의원 대부분이 들고일어나 이 기사를 비판하고 거세게 항의를 해온 것이다. 얼마 후 이 신문은 꾀를 내 그때와 비슷한 기사를 내보냈다. '정치인들은 모두 바보 멍청이다. 한 명만 제외하고….' 정치인 그 누구도 항의를 해오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유머가 없으면 아예 정치인을 꿈꾸지 마라'는 얘기까지 있다. 대중을 사로잡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유머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들은 자신을 과감하게 내던져 유머를 구사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유머 하나로 링컨 대통령에 버금가는 역대 최고 대통령의 반열에 올라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빠지지 않는다. 얼마 전 백악관 출입 기자 만찬에서 "출생 비디오를 공개하겠다"고 말한 뒤 새끼 사자가 태어나는 '라이언 킹'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좌중을 폭소의 도가니로 만든 것도 좋았지만, 일부에서 자신을 아프리카 태생이라고 공격한 데 대한 부드러운 반격이었다.

한국의 정치판은 유머와는 거리가 멀다. 한나라당은 지나치게 경직돼 있고 이해타산적인 분위기다. 가히 '웰빙 정당'이라고 불릴 만하다.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부터 웃음기가 없고 딱딱한데 다른 의원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민주당도 비슷하다. 여유나 타협의 여지도 없다. 얼마 전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이 보여준 한 편의 처절한 '개콘'이 인상적이다. "한미 FTA가 그렇게 위험한 줄 장관 시절에는 몰랐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는 말은 이때 쓰는 것이 아닐까. 재치와 해학이 넘치는, 부드러운 정치가 그립다.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