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예산·민생법안 또 표류…여야 쇄신론 후폭풍 속에

FTA 이후 정치권 지형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한나라당의 기습 처리로 통과되면서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여야는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공방만 벌이던 '전통'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기성정당들의 이런 변하지 않는 모습은 기성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혐오감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예산안 시한 내(12월 2일) 처리는 가능한가

민주당이 전면적인 FTA 무효 투쟁과 함께 향후 국회 일정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당장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지난달,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 시한(12월 2일) 내 처리를 합의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도 법정 시한 내 처리를 다짐한 바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정부 제출 예산안을 삭감'증액하는 계수조정소위를 21일부터 가동, 15개 상임위원회로부터 넘어온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증액과 감액 심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소위는 22일 FTA 본회의 표결로 중단됐고 재개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예결위 한나라당 간사인 장윤석 의원은 "민주당이 보이콧 선언을 했지만 예결위는 별개로 진행하자는 요청을 하려고 한다"며 "민주당 간사인 강기정 의원을 만나 의사 일정을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냉각기가 불가피하지만 장기전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넉 달여 남겨둔 상황에서 여야 의원 모두 지역구 예산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또한 야권은 통합이라는 눈앞의 큰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냉각 국면을 이어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예결위 한 관계자는 "최근 3년간 예산안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되면서 야당 의원들이 지역 예산을 챙기지 못해 총선을 앞둔 올해는 예산안 심사를 계속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야 정치권에 불어닥칠 후폭풍

여야 각 정당에는 거센 후폭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에서는 쇄신론이 다시 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준표 대표는 22일 비준안 처리 직후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여권의 총체적 쇄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쇄신 연찬회'를 조만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 입장에서는 10'26 서울시장 보선 패배로 위축됐던 입지를 다시 공고히 할 기회다. 계파 구분 없이 물리적 충돌은 있었지만 과거와 같은 불상사 없이 '무난히' 작전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쇄신 행보에 힘이 실린다는 평가다. 정책 쇄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정치 쇄신'으로 행보를 옮길지도 주목된다.

하지만 핵심인 공천 문제를 놓고 계파 간, 세대 간, 지역 간 충돌이 노골화될 경우 당이 지리멸렬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고, 탈당 및 신당 합류 등 제3의 길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야권 통합 추진모임인 '혁신과 통합', 한국노총 등과의 야권 통합 작업을 예정대로 추진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야권 통합 추진을 위해 소집한 23일 중앙위원회를 예정대로 개최하고, 이 자리에서 비준안 날치기 처리에 대한 규탄 결의대회를 갖기로 했다. 일부에서 지도부 책임론을 이야기하지만 남은 정치 일정상 새 지도부 선출이나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킬 만한 여유는 없어 보인다. 교체까지는 아니라도 책임론 추궁은 이어질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한나라당의 강행처리가 향후 야권통합 참여 세력 간 결속력과 결집도를 높이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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