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사람에게서 가장 자주 입에 오르내린 화두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온갖 예술의 주제였을 뿐 아니라 삶의 의미였고, 때로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는 에너지가 되기도 했다.
경상도 남자는 퇴근해서 집에 오면 딱 세 마디 말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애)는? 밥묵자(먹자), 자자. 여기에 비해서 서울 남자들은 곰살갑고 여자들에게 사랑의 표현도 잘한다고 한다. 여보, 사랑해. 이런 말도 자주 한다니 경상도 남자들에겐 부럽기도 하고 민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의문을 갖는다. 서울 남자들의 사랑은 경상도 남자들의 사랑보다 더 순수하고, 진하고, 많고, 강한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의 순도와 강도는 결코 표현의 횟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과 느낌을 가진다. 이걸 한마디로 마음이라고 한다면 이 마음은 말로 표현되고, 또 말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모든 말과 행위는 모두 마음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마음에 없는 말도 있고, 과장되거나 거짓된 말도 있으니까.
사랑 얘기를 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 이야기다. 에로스는 사랑의 화살을 자기 발등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인간 처녀와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자신은 신이기 때문에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서 밤에만 찾아왔다가 날이 밝기 전에 돌아간다. 행복에 겨워 있던 아내는 어느 날 언니의 얘기를 듣고 의심을 품게 된다. 밤에만 오는 남편이 혹시 괴물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촛불을 켜 들고 남편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너무나 잘난 미남임을 보고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촛농이 에로스의 얼굴에 떨어져서 에로스는 잠에서 깨어나고, 자신을 의심한 아내를 두고 집을 떠난다. 그때 에로스가 남긴 한마디 말. 그것은 "믿음이 없는 곳에 사랑은 없다"였다.
이것이 답이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믿는 마음이다. 말이나 행동이 아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도 생활 주변에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좋은 일이겠지만 꼭 저렇게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더구나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까지 꼭 껴안고 볼을 맞대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랑은 말로 표현할수록 농도가 옅어지고, 행동으로 나타낼수록 진실성이 떨어진다. 대상에 대한 믿음을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 때, 사랑은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스스로 느끼고 안다. 이심전심이란 말이 결코 헛소리가 아니다.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막스 피카드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라.
"사랑 안에는 말보다 더 많은 침묵이 들어 있다. 말하지 마세요. 당신의 음성이 더 잘 들리도록."
윤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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