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무사(思無邪)

사무사(思無邪)라는 말이 있다. 생각하는 데에 삿된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출전은 시경이다. 노송(魯頌) 편의 경(駉)에 힘이 세고 기세가 늠름한 말을 노래하며 '사무사 사마사조'(思無邪 思馬斯徂, 참으로 언제 보나 장한 말)라 했다. 당시 나라를 다스리는 데 공평무사했던 노나라 희공(僖公)을 말에 빗대 찬양한 노래라 한다. 논어 위정(爲政) 편에는 공자의 말씀으로 '시삼백왈 사무사'(詩三百曰 思無邪)라는 문구가 전한다. 시경의 시 300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하는 데 삿된 마음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10여 년 전 한 정치인이 신년 휘호로 사용한 것이 계기가 돼 널리 알려졌다. 그는 군사 쿠데타의 주역으로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이었다. 그 뒤 후배의 쿠데타 때 부정 축재 혐의로 쫓겨났다가 다시 정치 일선에 복귀해 국무총리와 당 총재를 지냈다. 개인의 소신이야 어떠했든, 바깥에서 보면 누구보다 평생을 삿된 마음으로 보낸 그의 입에서 '사무사'가 나온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요즘 한미 FTA로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여당은 나라를 살리는 일, 야당은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대화와 협상은 없고, 대립의 날만 세우더니 결국 날치기 통과에 맞서 국회에서 최루탄이 터지는 극한 상황이 벌어졌다. 언론 보도도 극명하게 갈렸다. 한쪽은 FTA 찬양 일변도다. 실(失)이 없진 않지만 득(得)이 더 많고, 실에 대한 만반의 대비도 돼 있다고 한다. 다른 쪽은 151명의 찬성 국회의원 얼굴 사진을 실었다. 이들을 심판해야 한다는 식의 선동인 셈이다.

중간에 끼인 국민은 참 답답하다. 정부와 정당, 언론이 모두 자신의 주장을 할 뿐이어서 옳고 그름의 구분도 쉽지 않다. 오히려 내년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대비해 정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힘겨루기를 보는 것 같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이들에게 '사무사'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 말이 왜 논어의 위정편에 실려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위정 편은 말 그대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시경은 정치보다는 오히려 문학에 가까운데도 굳이 위정 편에 넣은 공자의 뜻을 읽어야 한다. 어쩌면 공자는 '시삼백왈 사무사'가 아니라 '위정왈 사무사'(爲政曰 思無邪)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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