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핀은 마약이다. 마약중독자들이나 사용하는 아주 무서운 약임을 알고 있고, 평소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금기사항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핀에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정확한 지식도 가져야한다. 통계상으로만 따지면 암 덩어리를 가지고 마지막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암은 묵직한 암성통증을 가져온다. 그때 쓰는 명약이 모르핀이다.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 주사가 상식이듯이 암성통증에 모르핀을 마음껏 쓰는 사회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2005년 통계를 보면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호주 등 6개국이 전 세계 모르핀의 79%를 소비한 반면 세계 인구의 80%가 사는 중하위권 국가의 모르핀 소비 비중은 6%에 그쳤다. 부자나라 환자들이 고통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2005년 기준 한국의 인구 당 모르핀 사용량은 호주의 152분의 1, 일본의 11분의 1로 사용량이 선진국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모르핀은 위험한 약이다. 잘못 쓰면 마약중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잘 지키면 어떤 약보다 안전하다. 나는 모르핀을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장기를 파먹고 있는 붉은 핏덩어리의 암을 지니고서 모르핀 덕분에 아프지 않게 마지막까지 살아갈 수 있으니, 당연히 신의 선물인 셈이다.
모르핀 없는 호스피스란 생각도 못할 정도로 중요하다. 모르핀은 비싸지도 않다. 한 앰플에 200원도 채 안 된다. 그렇지만 이런 신의 선물, 모르핀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됐다. 프랑스 철학가이자 사르트르의 여인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1964년에 발표한 '죽음의 춤'이라는 저서에서 당시의 죽음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암과 싸우는 엄마의 고통과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녀는 죽음을 폭력이라고 묘사한다. 당시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은 지극히 제한돼 있었다.
여성 철학자 보부아르는 '사람이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라고 했다. 톱니바퀴로 배를 자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죽어 간다는 것은 보부아르가 표현한 그대로 폭력이다. 통증이 있는 죽음은 공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프면서 삶의 귀중함을 이야기할 수 없듯이 아픈 죽음은 어둡고 무서운 것으로 왜곡된다.
모르핀은 통증에 대한 내성이 없다고 말한다. 약이란 쓸수록 부작용이 커져서 용량이 제한돼 있다. 그런데 모르핀은 아무리 써도 통증에 대한 약효가 줄지 않는다. 신이 우리에게 아프지 말고 죽을 수 있도록, 특별히 내린 최고의 선물이다. 호스피스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되면 신이 주는 최고의 선물, 모르핀을 거부하지 말고 꼭 받아들이라고.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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